키코 판 9개 은행 임직원 72명 징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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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를 판매한 은행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금융당국이 키코 사태의 은행 쪽 책임을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제재는 키코를 둘러싸고 진행 중인 은행과 기업의 법정다툼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19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키코를 판 9개 은행(신한·씨티·SC제일·외환·우리·하나·산업·대구·부산)을 제재키로 했다. 또 은행 임직원 72명을 징계키로 하고, 이 중 4명에겐 감봉 등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조사 대상 중 9개 은행이 키코 판매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이 은행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지나치게 많이 팔았다. 은행들은 거래 기업의 예상 수출금액을 초과해 키코 계약을 맺는 바람에 손실을 키웠다. 또 위험한 거래를 했다. 일부 은행은 키코보다 위험이 큰 환헤지 상품인 ‘스노볼’ 등을 기업에 팔기도 했다. 손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키코로 생긴 손실을 새로운 계약으로 떠넘기는 거래를 한 은행들이 적발됐다.

금감원이 은행에 책임을 물었다고 해서 키코 판매 자체를 위법이라고 본 건 아니다. 키코가 불공정 계약인지, 판매할 때 위험을 제대로 설명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이번 제재 심의에서 빠졌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키코 소송에서 은행과 기업의 책임을 가르는 핵심 쟁점이다. 금감원은 이를 법원의 몫으로 넘긴 것이다. 김진수 금감원 제재심의실장은 “이번 제재 심의는 은행의 건전성 측면에서 이뤄져 법적 소송과는 쟁점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은행 관계자는 “제재 결정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줄곧 연기를 요청해왔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키코피해대책위원회 이승택 사무국장은 “금감원이 제재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시간을 끌며 결정을 연기했다”고 주장했다.

한애란 기자

◆키코(Knock In Knock Out)=원화가치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이 가입하는 파생금융상품. 원화가치가 일정한 범위를 유지하면 기업이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원화가치가 정해 놓은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녹 인) 기업은 손실을 보고, 원화가치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계약은 해지된다(녹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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