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피로와 불안… 그래도 꿈은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6면

40대. '제2의 질풍노도기'라 불린다. 회사의 부장·임원 등 중간관리층이지만, 20∼30대인 후배들과 50대 상사 사이에 끼여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윗세대로부터 혹사당했듯 아랫사람을 부리다가는 큰코다친다. '평생 직장'이라는 느낌도 외환위기 이후 사라진 지 오래다. 회사에 계속 있어야 하나, 아니면 퇴직금이라도 들고 새 길을 찾아야 하나. 벤처나 고속승진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가정에서도 결혼생활 10여년이 지나 권태기를 느낄 만한 때다. 몸도 예전 같지가 않다. 생리적으로 40대부터 뼈에서 칼슘이 빠지는 골다공증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칼슘보다 먼저 빠져나가는 것이 희망이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 중인 40대도 많다. 40대는 내리막길로 들어선 절망의 시기인가,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인가. S증권 김모 팀장과 G자동차회사 허모 팀장을 통해 40대의 고민과 애환, 그리고 그들의 소박한 꿈을 들어봤다.

#회사가 평생 직장이 아니라는 걸 느낀 적 있나.

▶김OO=입사 때는 당연히 평생 직장으로 생각했다(보험사에서 증권으로 옮길 때도 그룹 내에서의 이동이어서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1997년 환란 이후 꿈은 깨졌다. 특히 요즘 들어 실력이 뛰어난 후배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정년까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꿈'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허OO=외환위기는 직장인들로 하여금 많은 고뇌와 회의를 갖게 했다. 과거 한국 일류기업에서 근무한 거의 모든 직장인은 자기 직장이 쉽게 붕괴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회사를 떠난 동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허=대기업 사원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을 때는 사회적 위치와 능력이 상당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 떨어져나오면 조직 안에서의 능력과는 큰 차이가 생긴다. 회사를 떠난 과거 동료들이 혼자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나도 저럴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김=99년부터 2년간 지점장을 할 때 찍은 단체사진을 보면 아직 같은 둥지에 있는 동료들이 많지 않다. 회사를 떠난 이들 중 더 좋은 조건을 찾아간 경우는 드물다. 미래를 대비해 무언가를 준비하려 해도 마음만 앞설 뿐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신세대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한 노력은.

▶허=예전에는 술자리 등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요즘은 중간관리자로서 부하직원에게 업무에 대해 사전에 설명해 주고 공동의 교감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해가 있으면 공적인 자리에서 풀려고 한다. 술자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깨달았다.

▶김=똑똑한 후배들과의 마찰은 거의 없다. 후배들이 나를 먼저 이해해서 그런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아직 부족한 게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후배들과의 괴리감이 많이 줄어든다.

#상사와의 관계에서 힘든 적은 언제인가.

▶김=너무 힘든 경우도 가끔 있다. 석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차이만큼이나 의견이 대립될 때도 있다. 상사와 후배의 중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기 위해 황희 정승처럼 모두 옳다고 하기도 하고 장점 위주로 상대 의견을 전달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상사와의 갈등을 푸는 데는 술이 최고다.

▶허=우리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미국인이며 대다수의 경영진이 세계에서 모였다. 언제든 임원과 부하직원이 필요에 따라 대화할 수 있는 개방된 문화가 형성돼 있다. 직속 상사인 독일인 상무는 논쟁을 즐겨 한다. 그러나 외국인과 한국인 간에는 문화와 사고의 차이가 있으며 새로운 업무로 인해 약간의 혼선도 있다.

#40대의 또 다른 고민이나 애환이 있으면.

▶허=회사가 구조조정을 할 때 힘들었다. 회사의 나쁜 소식은 아내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놓기에 충분했다. 남편에게 부담 줄까봐 마음놓고 긴 한숨 한번 쉬어보지 못하고 베개에 소리없이 눈물짓던 아내를 보며 지난 3년간 하루도 마음놓고 산 적이 없었다.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스스로 능력을 키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김=현재 고민은 한가지다. 애들 교육 잘 시키는 것이다. 은퇴 후에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 모시고 농사를 지을까 생각 중이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면.

▶김=회사일에 충실하면 아마 임원은 돼있지 않을까. 사장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 'S'급 인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박탈감만 느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년에는 어학 학원도 다녀볼 생각이다. 두 아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진 돌봐줘야지.

▶허=외국 회사로 바뀌고 난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놓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번 망해본 회사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근성과 끈기도 생겼다. 외국 모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몇년 내에 우리 회사는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영어와 러시아어는 물론 2개국어 정도는 능통하게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0년 뒤 글로벌 네트워크를 책임지는 임원이 돼있을까. 아니면 내 사업을 하고 있을까.

정리=김동섭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don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