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스릴러 공식 못미친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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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는 멜로와 코미디에 강한 반면 상대적으로 스릴러와 공포물에는 취약한 편이다. 제작 편수나 관객 분포를 보면 이런 편향이 잘 드러난다. 스릴러와 공포물은 아직도 할리우드산(産)에 비교 우위를 점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는 게 중평이고 일반적 인식이다. 심리 스릴러를 표방한 'H'도 시도는 야심찼지만 결과는 그리 흡족스럽지 못하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시경 형사들이 사건에 도전한다. 이들은 각자 개인적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상처는 각각 사건의 열쇠와 연관돼 있다. 미연(염정아)의 상사이자 약혼자(이얼)는 신현의 자수로 충격을 받아 투신자살을 했다. 강(지진희)은 매춘부였던 어머니를 '언니'라고 부르며 자랐다. 제목 'H'는 살인 사건의 단초가 되는 이니셜이다.

'H'는 어둡고 가라앉은 화면의 개성 말고는 따로 두드러진 독창성이 보이지 않는다. 미연과 강이 사건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교도소로 신현을 찾아가는 대목은 누가 보더라도 '양들의 침묵'의 FBI 수사관 클라리스 스털링과 살인귀 한니발 렉터의 만남을 빌려쓴 것으로 보인다. 신현의 끄나풀이 다중인격을 지녔다는 점도 '프라이멀 피어' 등 여러 영화에서 낯이 익은 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오히려 사소하다. 더 치명적인 것은 막판의 반전 이후 관객들이 느낄 혼란이다. 스릴러 영화의 공식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순식간에 해결된 사건의 전말을 꿰기가 몹시 힘들다. 이종혁 감독의 데뷔작.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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