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생 건 대수술 "캐넌포 부활 보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3면

"동정은 원치 않는다. 프로는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팬들과 동료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

아프다는 것은 외로움의 시작이다. 약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걸린 큰 수술을 앞둔, 그것도 처음 수술대에 누워보는 환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말투가 씩씩했다. 홀로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올해 한국시리즈를 통해 절감했기 때문이리라.

프로야구 LG의 '캐넌히터' 김재현(27).

왼쪽 다리의 심한 통증으로 자칫하면 더이상 걷지도 못한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시리즈 출전을 자청, 동료와 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겼던 주인공이다. 수술 하루 전인 12일 김재현은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했다. 결국 전화로만 인터뷰를 했다.

김재현은 "일부에서는 술을 많이 먹어서 병이 생겼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무절제하게 생활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다. 앞으로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있고, 용기도 있다. 무서울 것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김재현의 병명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피가 통하지 않아 엉덩이 관절의 뼈가 썩는 병)'이라는 희귀병이다. 11일 경희의료원에 입원한 김재현은 13일 오전 8시30분부터 유명철 교수(정형외과)로부터 두시간여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유교수는 "조기에 발견해 수술이 매우 성공적이다. 사흘 뒤 걸을 수 있을 정도다. 내년 봄부터 그라운드 적응훈련이 가능하고 내년 시즌 후반에는 야구경기에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재현의 병명이 알려진 것은 지난 7월 초. 이후 김재현은 1군 등록과 말소를 반복하며 병원에서 검사와 치료를 병행했다. 김재현은 9월 말께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뒤 "내 몫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 자신의 등번호 7번을 모자에 새긴 동료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김재현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동료들을 돕지 않으면 스스로가 부끄러웠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란=엉덩이 관절을 구성하는 대퇴골두의 모세혈관이 막혀 뼈가 썩는 병. 혈관이 막히는 원인으로는 과다 알코올 섭취, 무분별한 스테로이드 남용 등이다. 이밖에 신장·간 질환도 주요 원인이다. 김재현은 1997년 신장염으로 한해를 쉬었는데 병원 측은 이를 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치료법은 괴사 부위를 인공관절로 대체하는 '인공관절 전치환술'과 손상된 뼈 부위만 제거, 원래 관절을 이용하는 '표면 치환술'이 있다. 표면 치환술은 거의 정상으로 재활이 가능하며 경희의료원 등에서 1천건 이상의 성공사례를 갖고 있다. 김재현도 이 방법으로 수술을 받았다.

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김재현 투병일지

2002년 7월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 판정

7월9일 1군 엔트리 제외

7월31일 1군 복귀

10월1일 미국 뉴욕 HSS병원 검진(이후 1군 엔트리 제외)

10월29일 한국시리즈 예비 엔트리 등록

11월3일~10일 한국시리즈 1~6차전 출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