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남은 제네바합의]하나 남은 경수로사업도 흔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의 핵 동결 해제로 1994년의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사문화되면서 양측의 파기 선언만 남겨놓은 꼴이 됐다. 북한의 현재 및 미래의 핵 개발 동결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합의의 대전제는 북한의 새 핵 개발 착수에 이은 핵 시설 동결 해제로 완전히 무너졌고, 합의 사항 중 남은 것이라곤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밖에 없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제네바 합의는 북·미 간 조약이 아닌 정치적 타결의 산물인 만큼 양측의 신뢰관계가 중요한데 북한의 이번 조치로 제네바 합의는 사문화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방북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에게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 조치는 제네바 파기를 의미한다"고 한 점에 비춰봐서도 제네바 합의가 북·미 양측 간에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그런 만큼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이 지속될 지는 불투명하다. 지난 8월 부지 공사를 끝내고 경수로 본체 공사에 들어갔던 이 사업(전체 공사비 46억여달러)의 중단은 경제적 손실을 넘어 한반도 평화와 안전 장치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실제 공사가 중단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전체 경수로 사업비의 70%인 32억2천만달러를 부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그간 국채발행을 통해 공사비를 조달해 왔다"며 "경수로 발전소 완공 후 북측이 17년 동안 상환키로 돼 있는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국가가 재정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hwas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