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씩씩한 이혜진 그녀를 위해 사이클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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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주니어사이클선수권 여자 스프린트에서 우승한 이혜진(왼쪽)과 앤디 스팍스 코치. [사이클연맹 제공]

“주니어가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다니, 대단하네요.”

기자의 질문에 이혜진(18·연천군청)은 “아뇨. 그 정도 기록은 나올 줄 알았어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이혜진은 16일(한국시간) 이탈리아에서 막을 내린 2010 세계주니어사이클선수권대회 여자 스프린트(200m) 결승에서 러시아의 그니덴코 예카테리나를 제치고 우승했다. 대회 2관왕이다. 2004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강동진(23·울산광역시청)이 은메달을 땄고, 시니어로는 조호성(36·서울시청)이 1999년에 3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금메달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혜진은 금메달을 목에 건 500m 독주와 스프린트에서 모두 한국 신기록을 새로 썼다. 올림픽 정식 종목인 스프린트에서 세운 11초291의 기록은 시니어 무대까지 통틀어 올 시즌 세계 10위권 기록이다.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좋아요

이혜진이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성남 태평중 1학년 때다. 남다른 체력장 기록을 본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페달을 밟게 됐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시작했어요. 페달을 밟으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가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특히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짜릿했어요.” 타고난 재능이었다. 2학년이던 2005년 처음 출전한 소년체전에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나가는 대회마다 메달을 싹쓸이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아버지 이후천(45)씨였다. 아버지는 막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힘을 불어넣어 줬다.

▶‘사이클계의 히딩크’ 앤디 스팍스를 만나다

이혜진이 워낙 발군의 기량을 보이긴 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는 여전히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대한사이클연맹의 지원으로 스위스 세계사이클연맹(UCI) 훈련센터에 입소하면서 기록 단축에 불이 붙었다. 세계적인 앤디 스팍스(35) 코치를 만난 지 한 달 만에 200m 기록을 0.4초가량 줄였다. 스팍스는 미국 대표선수 출신으로 미국 올림픽대표팀을 세계 정상으로 이끈 명 지도자다.

스팍스 코치는 이혜진에 대해 “지금까지 만난 선수 중 타고난 운동 능력이 가장 우수하다. 탄력과 사이클 회전능력이 천부적”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반면 근력과 체력을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스팍스는 곧바로 이혜진을 위한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그냥 입고 서있기도 힘든 20㎏ 모래조끼를 입히고, 10㎏의 납덩이가 달린 자전거로 경사진 트랙을 타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시켰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일명 ‘공포의 삑삑이’로 불리는 20m 왕복달리기로 체력을 끌어올렸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닮은 모습이다.

▶사이클에서 올림픽 첫 금을 딸래요

“최고도 좋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이 욕심나요. 우리나라 사이클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색깔도 기왕이면 금이면 좋겠죠.”

자신감 넘치는 것이 쾌속세대답다. 한국 사이클은 48년 런던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후 아직까지 올림픽에서 한 명의 메달리스트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혜진에게 거는 사이클연맹의 기대는 크다. 스팍스 코치는 “지금처럼 꾸준히 관리하고 훈련한다면 2012년 런던 올림픽 메달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사이클연맹 측은 전한다. 이혜진은 “빨리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아버지가 고된 일을 그만두고 가족 여행을 가는 상상을 하며 힘을 낸다”고 말했다.


이혜진은 …

생년월일 1992년 1월 23일생

체격 1m64㎝, 57㎏

출신교 성남 수진초-태평중-연천고

가족 아버지 이후천(45)씨와 어머니 이은영(44)씨의 1남1녀 중 장녀

취미 영화 보기, 음악 듣기

주종목 200m 스프린트

특기 순간 폭발력, 영리한 경기 운영

신조 한 번에 강하게. 매 순간 집중하자

좋아하는 음식 갈비·불고기

좋아하는 연예인 천정명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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