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바다 문화 살리는 묘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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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록 여수가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탈락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아마도 바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조금은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육지적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이겠지만 바다에서 세계를 바라보면 섬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최전방 진출기지이자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최전선이다.

때문에 그리스·이탈리아처럼 섬이 많은 국가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당연히 이들 섬에는 풍부한 인간과 자연의 교류의 역사·문화가 숨겨져 있다. 하지만 한국 역사에서 섬과 바다는 역사의 주류 흐름에서 비켜나 있었다. 섬과 바다가 버려진 것은 고려 말부터 시작됐고 조선시대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조선시대 공도정책이 살벌했을 때는 섬에서 산다는 그 자체가 국가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러나 반역죄로 다스리는 살벌함 속에서도, 또 '섬 놈'이라는 사회적 박대 속에서도 섬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백성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들의 문화가 있었다.

때문에 한국 문화사에서 섬과 바다의 문화는 숨겨진 문화들, 소외된 문화들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섬의 문화자료들에는 오늘날 우리 현대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민주적이고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이상과 질서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진도군 조도면에 가면 칠산 바다에서 황금 같은 조기를 잡아냈던 조도 닻배 선원들의 항해지식과 고기잡이 경험을 들을 수 있다. 파시(波市)의 신명, 출어하기 위한 자금 조달과 닻배의 건조, 소득 분배 방식들에 대한 생태적이고 신명나고 민주적인 기술과 생각들에 대해 듣게 된다. 또 돛단배를 타고 중국과 일본을 출입한 항해담을 듣는다. 이들을 기다리며 삶을 꾸려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들, 태풍에 밀려 일본 열도로 표류하면서도 배와 목숨을 지켜내는 뱃사람들의 대항해담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3천1백53개의 섬이 있다. 이중 57%에 해당하는 1천9백69개의 섬이 서남해에 집중돼 있다. 이처럼 많은 섬들이 각기 개성있는 문화로 채색돼 있는 다도해는 한국 문화의 풍성함의 또 다른 상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바다와 섬의 문화적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섬 주민 대부분은 60세가 넘는 고령자들이다. 섬과 바다는 그대로 있을지 모르지만 섬과 바다에서 살며 문화를 가꾸어온 주민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사라지는 날 한국의 도서 해양문화의 실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길게 잡아도 앞으로 10년 내에 한국의 섬과 바다의 문화를 조사하고 수집해 정리하지 못하면 발등을 찧으면서 후회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문화의 시대에 섬과 바다의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서둘러도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섬과 바다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람들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섬을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섬과 바다의 문화들을 수집 정리해 미래의 문화자원으로 삼는 길이다. 한국이 21세기에 풍성한 문화대국이 되려면 한국의 섬과 바다가 육지의 부속물이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선 독특한 문화와 전통, 설화가 살아 있는 섬과 바다 문화에 대한 기초조사만이라도 즉각적으로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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