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공시制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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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정공시가 도입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공정공시란 상장기업의 임직원이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 정보를 특정인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2000년 10월 미국이 시작한 이후 세계에서 두 번째의 공정공시 시행 국가가 됐다.

기업들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에게 선택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유리한 투자 추천을 받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얻은 내부자 정보를 자기의 고객들에게만 제공해 다른 일반 소액투자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기관투자가들도 선택적 정보제공의 수혜자였다. 이런 정보가 주가조작에 사용되는 경우들도 종종 있어 왔다. 공정공시제는 소위 정보의 비대칭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주가다. 기업의 선택적 정보제공 때문에 소액투자자들이 증권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고, 그 결과 투자가 줄고 주가도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 이 제도를 도입했던 당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 아서 레빗의 견해였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정보의 비대칭 현상은 줄어들지만, 주식시장에 공급되는 정보의 질과 양이 모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가는 오히려 낮아지고, 정보 부족으로 인해 주가의 변동폭은 커진다.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증권당국은 공시의 건수가 늘었다고 좋아하는 듯하다. 실제로 11월의 공시 건수는 하루 평균 64건으로 도입 이전인 10월에 비해 40% 늘었다. 그러나 공시 건수가 늘어났다고 정보 공급이 증가한 것은 아니다. 정보의 실질적 질과 양은 오히려 줄고 있다. 공정공시로 신고된 정보들이 기업 홍보자료 같은 쓰레기 정보라고 푸념을 듣고 있는 것은 정보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기업의 홍보팀이 기자·투자자 또는 일부의 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열던 기자간담회나 제품설명회·사업설명회의 내용이 공정공시 위반을 두려워해 금융감독원에 신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도 사업전망과 관련된 최고경영자(CEO)의 기자간담회들이 잇따라 취소됐다. 휴대전화나 e-메일을 단속하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기피의 대상이 됐음은 물론이다. 혹시라도 외부인과 대화를 하다가 기업에 관한 정보가 흘러나갈 경우 잘못하면 공정공시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투자와 관련된 기업정보는 일원화된 공식적인 창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흘러 나오던 정보들마저 아예 차단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공정공시의 주창자들이 정보의 생산과정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또는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관련된 정보는 그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산해 가지고 있다. 누구도 기업의 전모를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그 중에서 누가 가진 정보가 유용하고 정확한지를 찾아내 투자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야 정보는 비로소 정보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일을 해 왔었다. 우수한 정보를 생산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거나 또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누려온 것이다. 공정공시는 정보 수요자에 의한 적극적 정보생산 행위를 차단한다. 이제 누구나 같은 정보를 갖게 되는 대가로 적극적으로 생산된 정보를 잃게 됐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투자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에서도 공정공시의 폐지 주장이 여전히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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