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대학교육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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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에서 느끼는 한국 대학 졸업생들의 지식·기술 수준이 1백점 만점에 26점, 기업 임원 90%가 자녀를 해외유학 보내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 보고서는 부실한 우리 대학 교육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로 인해 대학과 산업현장의 괴리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기업의 불만은 대학 교육이 사회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집중된다. 학생들은 취업과 관련된 실용 지식에 목말라 하고 있지만 대학의 교과 과정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를 그때그때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유연성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산업체에서 필요한 심층지식 습득은 겉핥기 교육에 그치고 실습이나 현장 교육도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최고자문위원단 보고서에서도 학생 89%가 "대학 교육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학 교육의 문제는 몸집만 커졌지 백화점식으로 짜인 학과·전공 체제에서도 비롯된다. 특정 분야를 특성화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보다 대학마다 비슷비슷한 학과를 거느리고 고만고만한 학생을 배출하니 사회적 수요를 채우지 못한다. 고착화된 서열과 '간판'에 안주하는 무경쟁 풍토, 교육 여건과 시설의 낙후도 대학 교육의 부실을 부추긴다. 대학 교육에 대한 기업의 불만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기업들이 신규 졸업자보다 경력자 채용을 선호하는 바람에 청년 실업자 양산의 요인이 되고, 또 채용이 된다 해도 산업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없어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 필요한 인재를 해외에서 확보하는 데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로 인한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맞춤식 커리큘럼이나 산학 협동의 강화 등 대책이 필요하다. 대학은 취업과 돈벌이를 위한 학문에만 매달리지 않고 교양과 균형 잡힌 인격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존립 의미가 있다. 현재의 부실한 교육은 이 두가지를 모두 놓치고 있지만 대학이 그 심각성에 둔감한 것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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