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국가 "주권 침해" 발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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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로 자국민 1백여명이 숨지는 등 테러의 목표물이 된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가 외국내 테러기지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제기하자 아시아 주변국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2일 9·11 사태 이후의 대(對)테러전과 이라크와의 전쟁 추진 등에서 일관되게 자국 편에 섰던 호주를 옹호하고 나서자 상황이 더욱 꼬이고 있다.

◇호주판 선제공격=하워드 총리의 선제공격론은 지난 1일 TV 연설에서 나왔다. 그는 "이웃 국가에 근거지를 둔 테러리스트들이 호주를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 이를 차단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세계 각국이 어느 곳에서든 테러 위협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유엔 헌장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워드 총리는 2일 자신의 발언이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으로부터 주권침해라는 비난을 사자 의회에 출석해 "(선제공격론이)주변국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짝 물러났으나 철회할 뜻은 보이지 않았다.

미 백악관은 하워드 총리를 거들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선제공격을 지지한다"며 "9·11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각국은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원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행위로 간주"=평소 호주를 '미국의 보안관'이라고 비꼬았던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워드 총리의 발언에 대해 "건방지고 실망스럽다"며 불쾌해했다. 그는 이어 "말레이시아는 호주군이 테러를 다루기 위해 말레이시아 영토로 들어올 경우 이를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며 "만일 그들이 암살을 위해 로켓탄이나 무인항공기를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강홍준 기자

kang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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