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보인 후보 TV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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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간밤에 진행된 주요 대선 후보 1차 TV 합동토론회는 미디어 선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1997년 대선 때 처음 도입된 TV토론은 아직 미흡한 구석이 적잖은 게 사실이지만 돈·조직 동원 선거 폐단을 줄일 수 있는 방도임을 확인시켰다. 한나라당 이회창·민주당 노무현·민노당 권영길 세 후보가 한 자리에서 벌인 토론은 유권자들이 차별화된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특히 대북정책 부문에서 세 후보의 시각이나 정책방향은 뚜렷이 드러났다. 또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일단 제시한 정책이나 주장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호도할 여지가 없음을 분명하게 했다. 주요 대선 후보 모두가 국민 앞에서 깨끗한 정치·부패 청산을 거듭 다짐한 것은 미래의 담보라는 측면에서 소득이다.

그러나 기회만 닿으면 상대 후보를 헐뜯으려는 후보들의 자세가 여전했던 것은 못내 유감이다. 내용의 현실성과 합리성 여부를 떠나, 權후보의 태도가 돋보인 것은 비교적 공약 제시에 집중한 때문이다. 미디어 선거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도 인신공격은 단연코 시정돼야 할 부분이다. TV토론은 제스처·표정·어휘 등 감성을 자극하는 이미지 선거 쪽으로 흐를 소지가 충분하다. 전파매체의 일과성을 교묘히 이용한 비방·흠집내기 시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건전한 선거문화는 정착될 수 없다.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선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감시와 독려가 절실하다. 토론이 수시로 단절되는 것은 운영상 재고할 대목이다. 유권자들의 많은 관심을 유도하고 확실한 판단 자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시정돼야 한다.

정치·외교·통일분야에 대한 이날 토론에 이어 경제·사회를 주제로 한 두 차례의 TV토론이 남아 있다. 후보들은 나머지 두 차례 토론을 WTO체제 하에서의 농업개방·교육·의보 문제 등 국가적 현안에 대한 확실한 입장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TV토론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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