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남발할 때는 언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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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은행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세 군데 이상 받은 다중 채무자들에게 사실상 거래를 끊거나 축소하는 강경책을 취했다. 여기에 조흥·하나은행도 비슷한 조치를 단행해 카드 업계 전반으로 번질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우려된다.

금융기관이 불량 고객을 솎아내 카드 부실을 막고 경영 내실을 다지겠다는 것은 장려할 일이다. 실제 신용불량 카드는 현재 86만건으로 올 들어서만 28만여건이 늘었고 카드 연체율은 10%를 넘었다. 또 불량 고객에겐 현금서비스 등의 한도를 줄일 수 있는 게 카드 약관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카드 영업에서 보인 은행들의 모순적 태도다. 거리와 학교에서 카드 남발로 신용불량자가 쌓이고, 카드 빚에 쫓겨 자살하는 등 후유증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모두가 앞다퉈 고객 유치 경쟁에 나섰지 은행카드라고 뒷짐지고 구경만 했던 게 아니었다. 이러니 호객행위할 때는 언제고 그 부담을 고객에게만 지우느냐는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이익에 급급한 은행들의 영업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 당국에서 가계대출 억제를 밀고 나오자 이를 구실로 예금금리를 내리고 대출금리는 올린 게 바로 엊그제다. 그것도 남보다 먼저 치고 나온 게 리딩뱅크라는 국민은행이었다.

이번 조치는 신용평가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 무 자르듯 세 곳 이상 현금서비스 이용자를 잠재 불량고객으로 분류해 상당수가 빚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불량고객으로 취급돼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크다. 더 걱정은 여타 은행들이 비슷한 조치를 한꺼번에 취하려 들 때다. 신용불량자의 양산사태를 불러 그렇지 않아도 연쇄 가계 부실을 우려해 금리도 못 올리는 판에 이상한 곳에서 상황이 뒤틀릴 수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 대책은 은행으로선 영업정책의 큰 전환이다. 그렇다면 충분한 사전 예고로 해당 고객이 대비할 시간을 주고 신용평가도 더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카드 부실 방지야 좋지만 부담과 책임을 고객에게만 떠넘기려 한다면 서로 간에 장벽만 높아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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