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팔기 전에 마음을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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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지난 21일 ㈜태평양의 서울 명동 고객센터인 '디 아모레'에는 '메이크업 시뮬레이터'라는 듣기에도 생소한 기계가 설치됐다.작동은 고객이 시뮬레이터에 얼굴 사진을 입력하면서 시작된다.시뮬레이터는 미간 넓이,코의 길이와 폭,눈 크기,입술 두께 등 얼굴의 49개 포인트를 대상으로 분석에 들어가 '앳된 형''성숙한 형''부드러운 형''차가운 형' 등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 사분면 위에 고객의 얼굴이 속하는 타입을 정해 가장 어울리는 화장법을 가르쳐준다.

사분면은 20대 일반 여성 6백명과 배우·모델 1백명 등 7백명의 얼굴 사진을 49개 포인트로 분석해 비슷한 것끼리 모아 17개의 대표 얼굴을 나열한 것으로 얼굴이 주는 느낌은 남녀 대학생 3백명에게 설문 조사해 결정했다. 이 시뮬레이터는 연세대 정찬섭(심리학과) 교수 연구팀 등이 감성과학의 기법을 이용해 개발했으며, 태평양은 고객들의 반응이 좋을 경우 전국 지점으로 시뮬레이터 설치를 확대할 방침이다.

감성과학이 시장으로 밀려오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쾌적감·안락감 등의 감정을 정량적으로 측정,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인간친화적 제품을 연구하는 분야가 감성과학. 감성을 영어로는 '감정과 감각(Emotion & Sensibility)'으로 번역한다. 한마디로 기분좋게 해주는 방법을 찾는 학문이다. 감성과학이 국내에 소개된 지 10여년이 지나면서 '감성 팬티' 등 감성과학 기법을 동원한 제품들이 하나둘씩 선보이기 시작했다.

'메이크업 시뮬레이터'와 같은 화장품 외에 '약방의 감초'처럼 여러 제품에 감성과학의 개념이 대입되고 있다.한국표준과학연구원 민병찬 박사 연구팀은 안락감을 주는 향을 자동차에 끼워넣었다. 이산화탄소 실내 농도를 측정,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향과 함께 산소농도를 높여줘 장시간 운전에 따른 피로도를 덜어주는 시스템이다.

민병찬 박사는 감성과학에 대해 "같은 제품이라도 보다 소비자의 감성에 맞춘 인간친화적인 제품에 손이 가게 마련"이라며 "생활에 여유가 생길수록 미적인 감각까지 동원해 인간 중심의 제품을 연구하는 감성과학이 응용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인간의 감성을 객관적인 과학으로 증명하기 위해 설문지 조사, 행동 반응 등을 사용했다. 최근 들어서는 뇌파·맥박·호흡 등 생체신호를 시뮬레이터에 연결, 과거에 비해 과학기술의 범주에 좀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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