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배에 아빠 잃은 한인 남매 나란히 변호사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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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추수감사절에 가장 큰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당당하고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16년 전 흑인 불량배의 총격에 아버지를 잃은 한인 남매가 지난 22일 발표된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에 나란히 합격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윌리엄 홍(29·사우스웨스턴법대 졸)과 여동생 제니퍼(26·로욜라법대 졸).

이들은 1986년 와츠 지역에서 상점을 하던 아버지 홍이기(당시 38세)씨를 여의었다. 당시 아버지 洪씨는 가게에서 맥주를 집어들고 나가려던 여러명의 흑인 청소년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이 중 한명이 카운터 밑에 있던 총을 훔쳐 발사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13세·10세였던 이들 남매는 가게에 함께 있다 사건현장을 목격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굳은 각오로 새 인생을 꾸려갔다. 어머니 홍은경(54)씨가 운영하는 어린이학교(가든그로브 컨트리 크리스천 프리스쿨)의 일을 도우며 공부에 매달렸다. 세리토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남매가 함께 대통령상을 받는 등 우등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동생 제니퍼가 먼저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제니퍼는 중학생 때부터 변호사가 꿈이었다. 그는 어린이학교를 혼자 어렵게 운영하며 자신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여러 차례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제니퍼는 "어머니만이라도 옆에서 지켜주겠다"며 법대에 진학했다.

오빠 윌리엄은 대학에서 전공한 심리학을 박사과정까지 하려했으나 법대에 진학하는 동생을 따라 법대 입학시험(LSAT)을 치렀다가 법률 공부에 재미를 붙여 진로를 바꿨다.

어머니 洪씨는 "아버지가 없는 힘든 환경에서도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도 자랑스러울 것"이라며 "아이들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남매는 "그동안 우리를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드릴 수 있게 돼 큰 보람을 느낀다"며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일단 검찰에서 일하고 싶다는 윌리엄은 "기회가 있으면 민사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바인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제니퍼는 "검사가 돼 한때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미주지사(로스앤젤레스)=장연화 기자

cyha@joongang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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