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반발에 비리 예방 시늉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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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공무원행동강령' 입법예고안은 당초 발표된 부패방지위원회의 시안에 대한 공무원 사회의 거센 반발을 적극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강령이 담고 있는 구체적 내용들은 공무원들이 실제 생활에서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현실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행정자치부 관계자들은 "공직자들이 실천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도록 조정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굳이 강령으로 정할 필요도 없는 고만고만한 내용들도 적지 않게 담겨 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1999년 제정된 뒤 사실상 사문화된 '공직자 10대 준수사항'과 특별히 달라진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10대 준수사항에서 '직무와 관련없는 사람으로부터 5만원 이상의 선물 수수를 금지'한 것을 행동강령에서는 아예 빼버린 것 등이 눈에 띌 정도다.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패를 예방하고 청렴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당초 취지가 달성될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내용 완화=부패방지위원회가 지난 7월 권고안을 만들 당시 논란이 된 핵심 사항들이 크게 희석됐다.

부방위 권고안의 뼈대는 ▶직무와 무관한 사람에게서 일정액 이상의 선물·경조금 수수 금지▶직무와 관련된 사람으로부터 본인·배우자·직계 존비속의 선물·경조금 수수 금지▶직무 관련 기관·단체, 그 소속원에게 경조사 알리기 금지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 입법예고안은 직무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일정액 이상의 금전·선물·향응 등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빠졌다. 직무와 무관한 친구로부터는 골프 등의 접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경조의금과 관련,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에서 1급 이상은 직무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전면 수수를 금지했으나 이번에는 기관장이 정한 일정액 이하는 접수할 수 있게 했다.

또 경조사도 직무 관련자에게는 알릴 수 없지만 현재와 과거 재직했던 기관에 통지할 수 있으며, 신문의 부고란을 통한 공지도 가능하도록 조정했다.

입법예고안은 이밖에 ▶상급자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대해 취소 또는 변경을 요청할 수 있으며▶정당 등을 위한 후원금·기부금을 납부하거나 후원회에 가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일반적인 사항도 담고 있다.

◇공무원 저항=공무원들은 부방위의 행동강령이 공개되자 강하게 반발해 왔다.

부방위는 지난 9월 말까지 행동강령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내년 1월 초 시행하려 했으나 공무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행동강령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친인척의 경조금 수수 제한과 업무와 관련없는 친구 등으로부터 골프 등의 접대 제한 등은 현실을 무시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행자부는 10월 초 부방위에 "행동 기준이 현실과 괴리가 커 모든 공무원을 예비 범죄인으로 몰고 갈 우려가 있다"며 공식 항의하기도 했었다.

입법예고안에 대해 부방위의 한 관계자는 "행자부가 공무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것으로 부방위로서는 책임이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고대훈 기자

coch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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