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더 양보할 수도 鄭 협상 재개 안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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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 통로가 20일 새로 열렸다. 새로 머리를 맞댄 양측은 합의사항의 유출 논란을 의식해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민주당 신계륜(申溪輪) 후보비서실장이 오전 접촉에서 통합21 민창기(閔昌基) 홍보위원장에게 "실무협상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진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3명씩으로 구성된 민주당과 통합21의 새 협상단은 늦어도 21일 오전까지 최종 타결안을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로 철통보안을 지키며 반늦게까지 TV토론·여론조사의 날짜와 방식 등을 집중 논의했다.

이날 鄭후보 측이 새롭게 요구한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과정에서 '상대하기 쉬운'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을 걸러내야 한다는 것. 李후보 지지도가 통상적인 수준보다 낮게 나온 결과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측이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 가능성을 작게 보는 바람에 조율에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쟁점으로 예상됐던 여론조사 설문 문항에 대한 이견은 상당부분 해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지지도와 한나라당 李후보와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을 절충한 지난 합의의 틀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고 한다.

여론조사 날짜와 관련해 盧후보 측은 20∼30대 셀러리맨들의 참여도가 높은 주말이나 휴일을, 주부층의 지지가 두터운 鄭후보 측은 평일을 선호해 논란을 빚었다는 후문이다. 이런 가운데 단일화 전망을 밝게 하는 것은 盧·鄭 두 후보가 단일화 합의를 깨선 안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오후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민주당 후원회에서 조우한 두 후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강한 단일화 의지를 천명했다. 盧후보는 연설에서 "원칙을 지키는 범위에서"란 토를 달기는 했지만 "한발 더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鄭후보는 盧후보 부인 권양숙(權良淑)씨가 감귤 주스를 따라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盧후보가 어제 부산에서 '협상하지 않겠다'고 해 걱정했는데 다시 협상이 이뤄져 안심"이라고 꼬집었다. 협상에 자신이 더 적극적임을 은근히 강조하는 말이었다. 盧후보는 당사로 돌아와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말처럼 단일화 절차가 술술 풀려가기엔 걸림돌이 많다. 특히 단일화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의 우열이 확실히 갈릴 경우 불리한 후보가 합의를 끝까지 유지하겠느냐는 문제다.

이럴 경우 여론조사 전에 열리는 TV토론이 격한 감정싸움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양 진영이 목이 닳도록 강조해온 '믿음과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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