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 "뭘 먹고 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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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요즘 국내 증권사들은 고민이 많다. 수익 기반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매 수수료로 거둬들이는 수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보니 증시 상황이 조금만 나빠지면 적자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다 제 살 깎아먹기 식의 수수료 인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객 자산관리·투자은행 업무 등 다른 곳에서 수익을 많이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요즘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며 ?증시 침체가 오래 지속되면 문을 닫는 증권사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증권 신성호 이사는 점차 금융기관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더 이상 수수료만 먹고 생존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시황에 목매는 증권산업=삼성·현대·대우 등 대형 증권사들은 그나마 전체 영업수익(매출)에서 수탁 수수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50%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메릴린치·골드먼삭스 등 외국 증권사들의 20∼30%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나머지 국내 중소형 증권사들은 60∼70%나 된다.

<그래픽 참조>

히 수수료가 일반 수수료의 20∼30% 수준인 온라인거래 비중의 증가도 증권사의 수익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10월 말 현재 온라인 주식거래 비중은 약 65%다. 온라인거래 비중이 커지면서 매출이 늘어나도 실제 증권사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4∼9월 20개 상장 증권사의 영업이익과 순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9.8%, 44.2% 감소했다.

<표 참조>

현투증권 한익희 연구원은 수수료 할인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데다 4월 말 이후 주가 하락으로 생긴 유가증권 투자 손실도 증권사 수지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특히 증권업계의 거래수수료 낮추기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증권사들은 최근 투자대회 개최·은행제휴 기념·사은행사 연장 등 온갖 명목 아래 주식·선물·옵션 매매수수료를 면제해주는 행사를 잇따라 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당장 손해를 볼 수 있지만 수수료 외에 고객을 유치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수수료 면제 행사를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전문가들은 증권업계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려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외형을 키우고 특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비슷비슷한 증권사들이 난립해 있기 때문이다.

?메리츠증권 심규선 연구원은 ?국내 자본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국내에서 영업 중인 증권사 60여개사는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증권업계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에 놓여 있었다. 1997년 12월 말 36개였던 국내 증권사는 43개로 불어났다. 점포 수도 같은 기간 1천2백60개에서 1천6백여개로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M&A 움직임은 가시화하지 않고 있다. 현대증권·대우증권 등이 매물로 나와 있지만 아직껏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들 간의 합병도 없다.

메리츠증권 윤두영 이사는 여전히 1년 벌어서 3∼4년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증권사 경영진이 많다며 대주주들이 본인 지분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증권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종 투자는=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불안해 보이는 경기로 인해 증시상황이 호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증권주들을 사들일 때는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투증권의 한 연구원은 증권주가 오르려면 시중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며 증권업종에 대해 중립 의견을 제시했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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