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영희 칼럼

이란 딜레마에 지름길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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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이란 제재에 이스라엘 보호를 포함한 중동정책의 성패를 걸었다. 반대로 이란은 제재 효과의 최소화에 올인하고 있다. 비스마르크 같은 외교의 귀재가 환생해도 두 나라를 동시에 만족시킬 출구는 찾지 못할 것이다. 한국은 이란 제재가 미국과 이란의 양자 간 문제가 아니라는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란 제재는 우리에게 절반 이상이 북한 제재다.

북한과 이란이 긴밀한 군사협력을 해 온 지는 오래다. 이란은 북한의 노동 미사일을 수입해 이란표 샤하브 미사일을 개발했다. 이란은 원산지가 북한인 미사일 기술로 사정거리가 이스라엘에 미치는 미사일을 개발하고, 반(反)이스라엘 무장세력인 헤즈볼라에도 첨단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방콕 공항에서 적발된 북한의 무기를 실은 비행기의 행선지도 이란으로 파악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6월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이란 제재 결의의 연장선에서 동맹국들에 강도 높은 독자제재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란 제재의 중심에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이 있다. 1979년 출범한 멜라트 은행은 해외에 5개 지점을 개설하면서 하필이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서울에 지점을 두었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의 허브(Hub) 역할을 하는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이 이란과의 많은 검은 거래의 창구라고 의심한다.

이란과 북한은 서로 다른 이유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한다. 이란은 중동의 패권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북한은 생존전략으로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지금은 핵무기 보유국가의 지위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

미국이 이란의 중동 패권 추구의 최대 걸림돌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 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란 견제를 통한 이스라엘의 생존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란으로서는 참을 수가 없다. 미국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겨냥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방관할 수가 없다.

과거에 북한은 파키스탄의 협력에 의지한 플루토늄 방식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란은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무기 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미국과의 협력관계로 돌아섰다. 플루토늄 방식 원자로에 대한 미국의 위협과 국제사회의 감시는 6자회담이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강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몰래 개발하기 더 쉬운 우라늄 방식의 핵무기 개발로 눈을 돌릴 것이고, 그러자면 이란과의 핵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란 제재가 절반 이상 북한 제재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과 일본은 독자적인 이란 제재 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강약은 각각이다. 천안함 이후의 안보 환경에서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한다면 예상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너도나도 피해의 최소화를 주문한다. 그러나 방법의 제시가 없다.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을 잠시 폐쇄하고 일본처럼 중앙은행 간 거래로 최소한의 대금 결제를 하는 방식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금융당국이 나설 문제다.

문제는 이란이 높은 관세로 한국 상품의 진입을 막고 건설공사 수주에서 한국 기업을 제외시키고, 석유 수출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경우다. 답은 한국과 다른 나라들의 제재 수준의 상대적 비교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란에는 미국의 압력 속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 말할 수 있고, 미국에는 경제적 피해를 무릅쓴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미국과 이란을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일이니까 외교 베테랑들의 기량이 요구된다. 비스마르크는 아니라도 외교당국자들이 큰 외교 한번 할 호기다. 이란 제재는 구체적인 먹고사는 문제요, 북한을 제재하는 안보의 문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쏟는 노력의 절반만 쏟아보라.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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