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선에 엄청난 금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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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유령선을 뜻하는 '고스트쉽'(원제 Ghost Ship)은 끔찍한 공포영화다. 특히 첫 장면은 오랫 동안 뇌리에 남을 것 같다.

이탈리아의 초호화 여객선인 안토니아 그라자호. 타이태닉호에 버금가는 초대형 여객선이다. 선상에선 흥겨운 파티가 진행 중이다. 육감적인 여가수의 달콤한 노래에 맞춰 승객들이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단단히 묶어놓았던 날카로운 철선(鐵線)이 갑자기 풀리면서 허공을 가른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절단난다. 허리가 반으로 동강나고, 어깨가 잘려나가고, 팔뚝이 떨어지고 등등. 아비규환 자체다. 이때 움직이던 화면은 정지한다. 순간의 고요. 베어진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이어지는 한 소녀의 비명. 화면은 다시 아수라장로 급변한다.

이처럼 '고스트쉽'의 서두는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는 비틀거린다. 오감을 마비시키는 공포를 조성하는 데 가장 기본적 요소인 드라마가 부실한 까닭이다. 때때로 괴성을 유발하는 충격적 화면 하나로는 객석을 장악할 수 없는 것이다.

'고스트쉽'에선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또 현실과 환상이 교차한다. 초호화 여객선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유령처럼 실종된 지 40년 후에 발견된 것. 선박 인양 전문가들이 이 배에 오른다. 엄습해 오는 차가운 공기. 어린 소녀의 혼령도 띈다.

그리고 세탁장 근처에서 나온 엄청난 규모의 금괴. 인양대원들은 금괴를 뭍으로 옮겨 큰 돈을 만지려고 한다. 탐욕은 비극의 원인? 대원들은 하나 둘씩 죽음을 맞는다. 40년 전에 죽은 여가수에 홀려 배 밑바닥으로 추락하거나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여 압사한다. 알래스카의 망망 대해에서 공포의 변주곡이 연주된다.

'고스트쉽'은 재앙의 원인을 파고든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공포의 뿌리는 물욕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아쉽게도 이 부분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이 엉성해 때론 어리둥절하다.

올 초 개봉한 '13 고스트'로 데뷔했던 스티브 벡 감독이 전작의 실수를 되풀이한 모양새다. 숨막히는 공포는 특수효과로만 자아낼 수 없는 것이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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