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수 미달 법안' 재의결 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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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수인 1백37명)를 채우지 못한 채 통과된 20여개 법률에 대해 정치권이 어물쩍 넘기려 하고 있어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당시 국회는 본회의장에 의결 정족수의 절반밖에 안되는 70여명의 의원만 있는 상태에서 발명진흥법 개정안 등 20여건의 법률안을 처리했다.

이는 '일반 법안의 경우 국회의원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헌법 49조를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통과된 법률은 무효"라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 같은 지적을 외면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박관용(朴寬用)국회의장은 10일 "앞으로 의결 정족수에 미달한 상태에서 법안 등 의안을 처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미 통과된 법안의 재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朴의장은 "만장일치 안건의 경우 의원들이 본회의장 주변 소회의실·복도·화장실 같은 곳에 있으면 통상 일일이 출석을 체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며 '관례'를 이유로 재처리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국회 관계자들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입법기관이 헌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시민단체·학자 등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국회가 본회의의 의결 정족수 미달이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상황에서 법안처리를 진행해 법의 권위와 효력을 훼손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라며 법안 재처리를 촉구했다.

서울대 장달중(張達重·정치학)교수도 "재처리가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만일 무효 논란의 대상이 된 법률에 대해 이해관계자가 헌법소원을 내고, 헌법재판소에서 무효 결정을 내릴 경우 발생할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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