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대선정책검증]후보들 공약 民心과 따로 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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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등 주요 후보들의 대선공약이 유권자들의 정책 선택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중앙일보가 이들 세 후보 및 민노당 권영길(權永吉)후보와 유권자 1천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0대 관심정책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다. 후보에 대한 설문조사는 지난달 29∼30일에, 유권자 대상 전화 여론조사는 지난 1∼2일에 했다.

<관계기사 4, 5면>

'빅3'후보는 조사대상 10개 정책 중 의약분업·주5일 근무제·호주 및 호적제·고급 아파트 실거래가 양도세 부과·지방개발 등 5개 정책에서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선택한 방안과 다른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권자들은 주5일 근무제에서 47.5%가 '시기상조', 의약분업에서 49.5%가 '전면 재검토'라고 답했다. 주5일 근무제의 경우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18.5%)'까지 합하면 66%가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주요 세 후보는 한결같이 '의약분업 부분 손질', '주5일 근무제 일단 시행'쪽을 선택했다.

또 유권자의 44.9%는 호주 및 호적제와 관련, '남편 사망시 부인의 호주승계를 포함한 약간의 개선'을 요구했지만, 주요 후보들은 '완전 폐지 혹은 대폭 개선'을 택했다.

6억원 이상의 아파트 거래시 실거래가로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문제에 대해선 32.2%의 유권자가 "부과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지방개발 방안에선 41.5%가 '지방교육 인프라 확충 및 지방소득세 신설'을 꼽았다.

이에 따라 '빅3'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는 李후보 22.2%, 盧후보 25.3%, 鄭후보 24.4%였다. 10개 정책에 대한 주요 후보들의 답변이 일반 유권자와 두개 남짓한 정도에서만 일치한 셈이다.

이런 현상은 각 후보 지지자들의 정책선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지층의 정책지지도는 李후보 22.9%, 盧후보 27.2%, 鄭후보 24.2%였다.

숭실대 강원택(康元澤·정치학)교수는 "상대방 지지층을 빼앗아 오려는 '캐치 올(catch all)' 전략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선거과정에서 치열한 정책토론이 생략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책논의가 배제되면 유권자의 생각과 다른 정책입장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고, 결국 차기 대통령도 정책 추진과정에서 심각한 저항에 부닥쳐 조기 레임덕 현상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하경·최상연·김정하 기자

ha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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