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권하는 미국 지방정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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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재정난에 처한 미국 주정부가 앞다퉈 카지노 영업 허가를 내주고 있다. 가뜩이나 불황에 세금을 더 거두긴 어려우니 도박에 기대서라도 세수(稅收)를 늘려보자는 고육책이다. 특히 미국 동북부는 ‘카지노 천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이미 영업 중인 카지노가 41곳이고 신설을 추진 중인 곳도 20곳이 넘는다는 것이다.

뉴욕시는 최근 퀸스에 있는 애퀴덕트 경마장에 슬롯머신 영업을 허용했다. 이웃 뉴저지주에 있는 동부 최대 카지노 리조트인 애틀랜틱시티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펜실베이니아주도 뒤질세라 9개의 슬롯머신 카지노에 포커·블랙잭과 같은 테이블 게임 영업을 새로 허가했다.

그러자 매사추세츠·메인·오하이오·메릴랜드·델라웨어주도 앞다퉈 카지노 신설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말 매사추세츠주에서 문을 연 카지노는 이웃 코네티컷주 카지노와 로드아일랜드주 경마장에 타격을 입혔다. 카지노와 거리가 멀었던 메릴랜드주와 메인주에서도 각각 올가을과 11월 카지노가 문을 연다. 카지노는 어려운 주정부 살림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왔다. 2006년 뉴저지주의 11개 카지노가 주정부에 낸 세금은 5억 달러(약 58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엔 3억1200만 달러로 줄었지만 한 푼이 아쉬운 주정부 입장에선 가뭄의 단비 같은 수입이다.

주정부가 경쟁적으로 카지노 허가를 내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웃 주정부가 카지노를 허가해 줄 때 손 놓고 있다간 남 좋은 일만 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카지노 신설 경쟁으로 카지노산업은 휘청거리고 있다.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 매출은 2006년 52억 달러에서 지난해 39억 달러로 줄었다. 덩달아 9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도 마찬가지다. 뉴저지주 카지노재투자국(CRDA) 톰 카버 국장은 “주정부마다 고객 유치를 위해 카지노 시설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며 “과당 경쟁으로 카지노 파산 사태가 확산하면 시민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정부가 씀씀이를 줄이고 세수 확충에 나서기보다 카지노 신설에 매달리고 있는 데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카지노의 주된 고객이 서민인 걸 감안하면 결국 서민 호주머니를 털기 위한 각축전이라는 것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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