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마라톤 특집>추위·바람 불구 좋은 기록 수준 높은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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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마라톤 전반부는 한국 최고기록 작성의 기대를 한껏 부풀리게 했으나 30km 지점을 지나 선수들이 순위경쟁에 치중하면서 아깝게 최고기록 작성에 실패했다.

선두그룹 선수들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역주를 거듭해 반환점을 1시간3분대에 통과, 우승기록은 2시간 6,7분대를 예상케 했다. 전반부보다 내리막길이 많은 후반부 코스 성격상 한국기록(2시간7분20초·이봉주) 경신을 점치는 육상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30km 지점을 통과할 무렵부터 한강 쪽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에 선수들이 주춤했고, 체력소모를 의식한 탓인지 서로 선두그룹의 앞자리를 양보하려는 기미마저 나타났다.

이때부터 레이스는 기록 대신 순위경쟁으로 변모했다. 마라톤에서 40km 지점을 데드 포인트(dead point)라 부른다. 기록단축을 위해 남은 힘을 다 쏟아붓는 지점이란 뜻이다. 그러나 선두그룹의 얼굴에서 죽도록 힘들어 하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고, 골인지점을 1∼2㎞ 남길 때까지 선두그룹이 5∼6명이었다는 사실은 이날 레이스가 순위경쟁이었음을 알려준다.

마라톤 적정 온도가 8∼10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4∼5도의 온도는 따뜻한 곳에 사는 아프리카 선수들은 물론 한국선수들에게도 추운 날씨였다. 게다가 바람도 매서워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날씨가 차가우면 체온이 떨어지고 땀이 배출되지 않아 선수들의 몸이 굳는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6명이나 2시간9분대를 달렸다는 사실은 중앙마라톤이 세계적 수준의 대회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중앙마라톤은 침체된 한국 마라톤에 한줄기 빛을 선사했다. 신예 지영준(21·코오롱)이 이봉주(32·삼성전자)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 떠올랐다는 점과 김이용(29)의 재기를 확인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사실 국내 마라톤은 이봉주를 이을 마땅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지영준이 지난해 춘천마라톤에서 1위를 했지만 기록은 고작 2시간15분대였다. 김이용은 99년 로테르담에서 국내 역대 3위 기록인 2시간7분49초를 기록한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다.

한국 마라톤은 국내 대회에서 특히 취약했다. 김이용이 1997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9분21초를 기록한 이후 5년간 한번도 10분벽을 돌파하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두 선수가 2시간9, 10분대를 달렸다는 사실은 중앙마라톤은 물론 한국마라톤의 밝은 미래를 보인 것이다.

(중앙일보 마라톤교실 감독/런너스닷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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