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에 대화 핑계로 끌려 다니지 않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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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모스크바의 돔 쿨트르이(문화의 집) 극장 인질극 진압작전을 주도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이그나텐코 세르게이(사진) 대변인이 30일 외국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FSB 본부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용.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28일 테러와의 전쟁을 전격 선언했는데.

"테러와의 전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러시아 연방정부는 오래 전부터 테러를 막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체첸 반군에 대한 재정지원과 무기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를 더 강화한다는 의미다."

-체첸은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해 오지 않았는가.

"체첸 지도자를 자처하는 아슬란 마스하도프(체첸 자치공화국 대통령)에게는 전권이 없다. 그는 반군들에게 테러 지시도 내렸다. 돔 쿨트르이 극장 테러도 그는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 인물과 어떻게 대화를 하겠는가. 우리는 대화를 핑계로 끌려다닐 생각이 없다."

-체첸과 전쟁을 한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미국·이라크와 같은 싸움은 없다. 체첸은 러시아 연방의 일부이기 때문에 비교할 상황이 아니다. 비행기로 폭격하고 탱크로 쳐부수는 방식이 아니다. 다만 반군의 목을 더 죈다는 의미다."

-진압작전에 사용된 가스는 무엇인가.

"가스 제조를 담당한 기구가 언급을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말할 수 없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조사를 요구하는데.

"미국도 자국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도 생화학무기를 비밀로 취급하지 않는가. 우리도 조사에 응할 의무가 없다."

-진압작전이 성급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러시아 정부는 성실하게 협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협상에 참여했다. 국회의원·의사·심리학자, 심지어 영국의 특파원도 참여했다. 그들은 인질 석방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질을 살해했다."

-진압작전이 사전에 계획됐다는 관측이 있다.

"맞다. 협상과 더불어 구출작전도 준비했다. 반군의 잔혹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무력 진압작전이 사전에 준비된 것은 사실이다. 인질들이 살해되는 것을 계기로 작전에 들어갔을 뿐이다."

-풀려난 인질들은 테러범들이 인질을 살해하지 않고 잘 대해 줬다고 한다.

"당신이 모든 인질들과 얘기를 해봤는가. 인질들이 테러리스트에게 설득당하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것도 있다. 극장 내에는 8백명에 가까운 인질이 있었다. 그들은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은 말을 안 듣는다고 총을 쏘기도 했다."

-그러나 인질들에게 총을 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진압작전이 시작되기 전 그들은 18세 소녀를 쏴서 가슴에 구멍을 냈다.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모스크바=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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