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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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콩밭 지나 뒤란

쪽문 앞에 앉은 고양이,

눈에서 가을 떡갈나뭇잎이 부스럭댄다

정점으로 박힌 아우성은 서서히 소진되어

흔들림없이 무언가 응시할 뿐

서리내린 갈대밭을 기어

집으로 돌아가는 쓸쓸한 노을 하나

본다

털에 세운 모든 촉각들은

눈(眼)으로 가는 길고 먼 회로(回路)

어두운 길 위에 쏟아지는 피묻은

울음 하나,

눈(眼) 속에 처연히 울고 서 있다.

-우대식(1965∼) '눈(眼)' 전문

이 시의 시안(詩眼)은 '겹눈', 복안(複眼)이다. 시인의 눈에 든 스산한 늦가을 풍경이 고양이의 눈에 있고, 그 풍경들이 시인의 눈에 되비쳐들면서 새로운 '속풍경'들로 태어난다. 고양이는 털끝까지 곤두세운 촉각으로 흡인하고 있다. 고양이의 눈은 그 날카로운 낱낱의 화면이다. 조락(凋落)의 풍경들이 내는 울음 소리마저 담고 있다. 직선적인 평면의 서정시들이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입체적 교감(交感). 알고 보면 다 보인다. 세상의 사물들은 이렇게 소통하고 있다. 신통(神通)이여.

정진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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