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9단 강경책은 제스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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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제2보

(18~30)=흑로 나와 단칼에 끊은 수는 1)강렬하고 2)둔탁하며 3)직선적이고 4)무식한 이미지를 띤다. 이창호란 사람이 주는 온건하고 곡선적이고 전략적인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르다. 이창호9단의 기풍이 변한 것일까. 얼마 전 이세돌3단과의 왕위전에서 치열한 싸움바둑을 선보이더니 아예 그 길로 가기로 작심한 것일까.

22까지는 외길. 李9단의 다음 수를 향해 검토실의 눈이 모니터로 집중되고 있다. 프로들은 '참고도' 흑1로 한칸 뛰어 크게 공격하는 수일 거라고 예상한다. 이 수에 백이 2로 귀를 굳히면 흑도 3으로 포위해버린다. 백2가 헤아릴 수 없이 크지만 흑3으로 다 잡히고 만다면 이 흑집은 더욱 크다.

그러므로 백은 A로 뛰어나올 것이고 흑도 B로 뛰게 된다. 백이 어딘가를 지킬 때 흑은 비로소 C로 돌입한다. 이렇게 된다면 흑 성공이 분명하다.

그런데 李9단은 놀랍게도 즉각 23으로 귀에 돌입했고 중앙은 백에게 순순히 내줬다. 19로 끊을 때의 기세는 전혀 딴 사람 같았지만 그는 곧바로 전략적이고 치밀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공격하다가 후수를 잡을까봐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후야오위7단은 고맙다는 듯 즉각 26을 두었고 27엔 가차없이 28로 잡아버렸다.바둑은 여기서 흑 실리, 백 세력으로 확연히 갈렸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협찬: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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