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문전성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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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저희 가게선 세 개 이상은 안 팔아요. 죄송합니다. "

"그러지 말고, 가방 한 개만 더 살게요. "

지난 25일 오전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손님이 물건을 더 사겠다는데 주인은 안된다고 하는 이상한 흥정이 벌어진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고 파는 물건들이니 뒤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기회를 드려야죠. "

가게 점장인 이혜옥(47)씨의 설득에 유리잔·핸드백·스웨터·운동화 등을 계산대에 올렸던 40대 주부가 운동화를 내려놓았다.

참여연대가 설립한 재활용품 전문매장 '아름다운 가게'가 지난 18일 개점한 이후 연일 문전성시다. 밀려드는 손님들의 질서 유지를 맡은 최용수(50)씨는 "오전 10시30분 문을 열기도 전에 매일 30∼40명이 줄을 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몰리자 '한 사람당 물건 세 개 이상을 살 수 없다'는 새 규칙까지 생겼다.

'아름다운 가게'의 인기 비결은 중고 물건들을 자원봉사자들이 새 것처럼 손질해 싼 값에 판다는 것.

여섯평 남짓한 매장 안에는 인형·옷·주방용품에서 책과 CD·골프채까지 다양한 물건이 가격표와 함께 진열돼 있다. 의류는 1천∼1만원, 인형은 작은 게 5백원, 신발은 보통 5천원선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게'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이곳에서 생기는 수익금이 모두 불우이웃을 위해 쓰인다는 점이다.

가게 매니저 이진옥(37·여)참여연대 간사는 "여기가 물건을 싸게 사는 장소로만 여겨지는 것 같아 속상한 적도 없지 않다"면서 "서로 나누는 마음과 재활용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든 손님들이 자기 실속만 챙기는 건 아니다. 이날도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주부, 어린 손자와 함께 쓰던 물건들을 챙겨 온 할아버지 등 온정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일 점원 신청서'를 낸 단골고객 강은숙(51·서울 평창동)씨는 "번번이 받기만 한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현경 기자

goodjob@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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