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포위망을 뚫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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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제7보 (90~109)]
黑 . 저우허양 9단 白.왕시 5단

시간은 마냥 흐른다. 어둠 속에서 한가닥 가느다란 실처럼 먼 불빛을 향해 나아간다. 손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바둑알이 번득거린다.

수를 읽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러나 진짜 큰 난관은 수읽기가 아니다. 수를 다 읽은 뒤 그때의 결과가 좋은가 나쁜가 판별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어려움이다. 결과의 선악을 판별한 뒤엔 인간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결과가 좋아도, 소위 이득이 남는 장사라 해도 그 이득이 너무 작게 느껴지면 싫어진다. 유리할 때는 작은 이득도 고맙지만 불리한 쪽에선 좀더 큰 이윤을 찾아 모험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성격도 작용을 한다. 그래서 모든 수읽기는 지워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지금 흑의 저우허양(周鶴洋)은 포위하고 백의 왕시(王檄)는 돌파하려 한다. 목숨이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대접전이다.

그런데 전투의 진행상황이 참으로 묘하다. 왕시가 코앞의 포위망을 뚫는 대신 90으로 먼 데를 젖히고 있다. 91은 당연한 차단인데 이번에도 왕시는 92로 외곽을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같은 수순으로 포위망이 뚫렸다.

바둑의 이치를 음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이 만약 '참고도' 백1로 단수하며 코앞을 깨부수고 나가려했다면 흑 2, 4, 6의 수순으로 전멸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왕시는 오히려 흑의 취약한 연결고리를 외곽에서 두드림으로써 자연스럽게 포위망이 열리도록 만들었다.

93이 오면 94의 수비는 절대. 95로 이었을 때 96으로 밖에서 치르자 흑은 이을 수 없다(이으면 A의 회돌이를 당한다). 98에 이르러 패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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