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무서운 줄 알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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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우리나라 성인의 지갑을 열어보면 신용카드가 적어도 4개는 된다고 한다. 몇년 전까지 신용카드가 없던 나도 요즘은 국가시책에 따르기 위해 하나 카드를 쓰고 있다.

누구나 흔히 쓰는 신용카드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카드를 지녀 본 적이 없다. 내가 생활신조로 삼는 '근검절약'을 누누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백화점 카드라도 하나 갖고 있으면 물건을 살 때 몇%씩 할인해 주니까 그게 바로 절약이 아니냐"며 아내는 가끔 내게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것도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10∼20% 할인 가격으로 구입하는 것보다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절약이 아닌가. 사실 그 몇% 할인이라는 광고 문구 때문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내가 식구들에게 강조하는 또 다른 하나는 무심코 저지르기 쉬운 낭비를 줄이자는 것이다. 방에서 공부하거나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식사하러 식당으로 올 때면 반드시 불을 끌 것, 양칫물은 꼭 컵에 받아서 쓸 것 등…. 생활 속의 많은 낭비 요소들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없앨 수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까짓 돈 아껴 봐야 몇 푼이나 되겠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10만원을 가진 사람이 그 돈으로 11만원을 만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사회현실에 비춰보면 1백만원으로 1백10만원을 만드는 것이 그보다 쉽고, 1천만원으로 1천1백만원을 만드는 게 더욱 쉽다. 이는 바로 근검절약으로 창조되는 목돈의 위력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린고비처럼 평생을 돈만 움켜쥐고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차곡차곡 모아 목돈이 생기면 본인 스스로나 가족에게 꼭 필요하고 값진 물건을 장만할 수 있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도 있다. 나아가 올해처럼 수해로 큰 고통을 당하는 수재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요없는 소비를 줄여서 모은, 가치있는 돈을 현명하고 뜻깊게 쓰는 즐거움을 느끼자는 것이 내가 가족에게 강조하는 근검절약의 참 뜻이다.

쌀밥 한번 배불리 먹고 전깃불 환히 들어오는 집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어린 시절, 등록금을 잃어버려 학교를 다니지 못할 뻔했던 중학교 2학년 때 등 순간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다짐했던 '1원의 위력과 근검절약의 가치'를 나는 요즘도 자주 되새긴다. 오늘도 그 미덕을 우리 가족 네 사람만이라도 철저하게 지키고 습관화하도록 노력하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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