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도운 北核관련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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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론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 하나, 아니면 적절한 선택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나. 양자택일의 답을 요구한다면 분명 우문(愚問)이 될 것이다.

둘 다 신문의 역할이며, 이들이 서로 충돌할 때는 적절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주 중앙일보에서는 그런 균형이 잘 잡혀져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다 볼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한 충격의 뉴스는 말할 것도 없이 북한 핵 개발 문제였다. 중앙일보는 이 사안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다각도로 문제의 전개 과정을 보도하며, 적절한 해설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기획기사에서는 이런 차분하고 종합적인 태도가 사라져 버린다. '뛰자! 한국 여성' 시리즈에서 그랬듯이, '지방을 살리자 Ⅱ'(15,17일자) 시리즈에서도 전체 그림이 선명히 들어오기보다는 구호 소리가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는 데 있어 가장 시급하며 비중이 큰 문제는 중앙에만 치우쳐 있는 행정권과 교육환경 및 사업 관련 권한들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다양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에는 이보다 비중이 훨씬 작기는 해도 다른 이유들도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적인 정치문화가 아직 미숙하다거나 각종 제도 장치들이 균형 있게 갖춰져 있지 않다거나 하는 점들이다. 지방에서도 권력이 오·남용돼 마구잡이 개발이 진행된다든지, 지방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 지역 사회의 화합을 파괴한다는 등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앙의 힘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진행돼온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균형있게 짚은 다음 올바른 지방자치의 상을 그려보고, 그 상을 구현하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해 본다면 기획 의도를 더욱 충실히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한 문제점이 규제 완화에 대한 보도('제왕적 대통령 이렇게 바꾸자(7)-비리 낳는 규제 과감히 개혁해야'·15일자 12면)에서도 보인다. 규제란 무조건 철폐돼야 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수단으로서 불가피한 구조적 요인이 있으며, 실제로 규제가 노동권을 보호한다든지 마구잡이 개발을 막는 데 유효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적응해 가는 우리의 노력에 낡은 규제가 장애가 되는 부분을 시정하는 일이다. 특정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분석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치고, 변화된 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은지 등 총체적이고 객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특파원의 바그다드 통신(14∼17일자)은 참신한 발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미국과 기독교 문화의 영향권에 있는 우리에게는 이슬람 사회의 사는 모습이 상상조차 잘 되지 않을 정도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몇 번 보니 금방 지루해졌다. 지역에 대한 스케치는 아무리 단편적인 것이라도 그 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무게가 깔려 있어야 제맛이 난다. 거리의 풍경들을 표면적으로만 보고 그려내려 한다면 곧 한계에 부닥친다. 사전에 이슬람 문화 및 이라크 사회에 대한 지식을 보다 충분히 갖추었더라면 그 정도로 할애한 지면과 참신한 발상의 가치를 좀더 살려낼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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