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天衣無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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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 5대10국 시기(907~960) 전촉(前蜀)에 우교(牛嶠)라는 문장가가 있었다. 그가 쓴 ‘영괴록(靈怪錄)’에 이런 글이 나온다.

“선비 곽한(郭翰)이 어느 여름날 밤 나무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늘에서 유성이 흐르더니 한 여인이 바람을 타고 내려왔다. ‘누구냐?’라고 물으니 여인이 답하길 ‘하늘에서 온 선녀’라고 했다. 선녀가 인간세에 오다니, 기이한 일이다. ‘그렇다면 천상(天上)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여인은 ‘사계절이 봄같이(四季如春) 따뜻합니다. 나뭇잎은 사철 푸르고, 꽃이 지천에 피었지요’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믿기 어려웠다. ‘선녀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라는 곽한의 추궁에 여인은 ‘제 옷을 자세히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옷을 살피던 곽한은 깜짝 놀랐다. 꿰맨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옷에는 이음매가 없습니다(天衣無縫). 믿지 못한다면 당신은 영웅이 아니겠지요.’ 이 말을 남기고 선녀는 사라졌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어원이다. 결점이나 하자(瑕疵)없는 완벽한 상태를 뜻한다. 옷에 바느질 자국이 없으니 그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겠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예쁜 법이다. 그래서 천의무봉에는 ‘자연 그대로의 멋’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결점 없는 상태를 이르는 또 다른 말이 ‘완벽(完璧)’이다. 사마천 『사기』 ‘인상여열전’편에 뿌리를 둔 말이다.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진귀한 옥을 얻었다. 이웃 강국인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이를 탐냈다. 그는 15개 성(城)을 줄 테니 옥과 바꾸자고 했다. 사실상 빼앗겠다는 속셈. 이를 간파한 조나라 충신 인상여는 옥을 들고 진나라로 떠나며 ‘소왕이 약속을 지키면 옥을 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벽옥을 온전히 하여 조나라로 돌아오겠다(完璧歸趙)’고 말했다.” 인상여의 재치로 옥은 온전히(完璧) 조나라로 돌아왔다고 『사기』는 전한다.

20세 이하 여자축구 월드컵에서 지소연 선수의 활약은 완벽에 가까웠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는 ‘천의무봉’이라 할 만큼의 연기를 보여준다. 골프 분야에서도 신지애 선수 등 한국 낭자군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들은 어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인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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