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장맛처럼 은은한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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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김문수의 신작 소설집에서 톡톡 튀는 감각적인 문체나 참신한 감수성을 맛볼 수는 없다. 동시대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날카로움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문학평론가 장영우의 지적대로 '묵은 장맛' 쪽이다.

'꺼오뿌리'는 '개도 상대하지 않는 놈'을 뜻하는 중국어 구불리(狗不理)의 중국식 발음이다. 성질이 개차반 같았지만 기막히게 맛있는 만두를 빚었던 주방장의 만두집 이름이 일반명사처럼 통용된 것이다.

만두집에서 졸지에 꺼오뿌리라는 별명을 언게 된 실향민 사업가 박민식을 포함, 37명의 중국 관광단이 1990년 톈진·선양·옌지를 거쳐 백두산까지 이르는 여정이 소설의 줄거리다. 새로울 게 없는 식상한 소재지만 읽어나갈수록 은은한 맛을 느끼게 된다. 꺼오뿌리가 두만강 너머 부모님이 계실지 모르는 종성 땅을 지척에 두고 시제(時祭)를 지낸 뒤 절규하며 실향민의 아픔을 쏟아내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꺼오뿌리에 비하면 소품이라 할 만한 '아론'은 상관과 내통한 아내의 부정을 처단한 흑인 하인이 원숭이를 등장시켜 살인 혐의를 모면하는 얘기를 우화적으로 그렸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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