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골라주는 아버지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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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 책 좀 찾아 주세요."

동화 읽는 어른 모임 회원 한 분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말고 들고 있던 목록을 내민다. 에스키모 소년 아툭의 이별과 죽음, 미움과 사랑을 그린 『아툭』(한마당), '이 지구는 우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낳아 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빌려쓰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로 시작하는 『거인사냥꾼을 조심하세요』(시공주니어), 그리고 『최열 아저씨의 우리 환경 이야기』(청년사) 등 부르는 대로 뽑아 드렸다.

아마 이번주 토론 주제가 환경 관련 책인가 보다. 프레드릭 벡의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과 『위대한 강』을 함께 봐도 좋을 텐데.

벌써 6년 이상 우리 서점과, 악어와 악어새처럼 지내는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은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1층과 지하에 자리잡는다. 따라온 아이들도 적당히 놀 곳을 찾아 들어간다. 올해 시작한 8기 모임은 엄마들 토론 분위기가 진지해서인지 따라온 아이들도 엄마들을 훼방놓지 않고 잘 돌아다닌다.

참 대단한 일이다. 십여명 남짓한 소모임들이 주마다 한번씩 모여 어린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거다. 전국적으로 생각하면 동화 읽는 어른들은 1천여명이 훌쩍 넘을 텐데 얼마나 놀라운가?

그런데 다만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회원의 참여율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 분들이 꾸준히 모임을 갖다가 나중나중에 '동화 읽는 할머니' 모임이 되면 좋을 텐데.

이 모임도 그렇지만 책방 안에서도 동화를 읽어주는 아버지들은 많지 않다. 일로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 손을 잡고 책방에 나오는 아버지도 있다. 선용이네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책방에 자주 들른다. 십에 팔구는 아버지가 남매를 데리고 나와 오순도순 앉아서 책을 본다. 이 아버지는 가끔 아이 손에 오디오 시디를 들려보내기도 한다. 서점에서 들으면 좋을 음악까지 선곡해주시는 거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르는 그림이네 식구는 처음에는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었는데 지금은 한쪽 의자에 부녀가 나란히 앉아 책을 본다. 이제는 아버지가 책 목록을 건네며 주문하신다. 나도 모르는 책일 때도 있다. 또 가끔은 새로 나온 책이나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의 작품에 대하여 나름대로 평을 해주시기까지 한다.

바쁘게 생활하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그 시간을 쪼개 아이들과 함께 책방 나들이를 나서는 아버지, 이 아이들이 커서 아버지를 떠올릴 때 그 기억이 남다를 것이다. 보통의 아버지들은 이렇다. 바깥에 차를 주차하고 대기하거나 안에 들어왔더라도 금세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 물고 서성인다. 그리고 계산할 때 들어와 값을 치른다. 어린이 책이 시시해서일까?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떤 아버지가 좋았는지 금방 떠오를 텐데.

정병규 <어린이 책 전문서점 '동화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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