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생태계 보호 지혜 모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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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남북간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공사가 시작되면서 민감한 일이 벌어졌다.

'끊어진 남북 길 잇기'라는 역사적 사건과 '비무장지대 안 생태계 보호'라는 두 가지 사안이 충돌한 것이다.

정부는 동해선 남북 동시 착공 일주일 전인 지난달 11일 지형·식생·조류 등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생태조사단을 현장(강원도 고성)에 보냈다. 분단 50년 동안 원시 상태로 보존된 미지의 생태계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두 차례 조사 후 조사단이 내놓은 의견은 '공사 예정 지역에서 발견된 습지와 해당화 군락이 있는 사구(砂丘) 등을 보존하기 위해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본지 10월 7일자 30,31면)이었다.

그러자 공사를 주관하는 건설교통부의 태도는 달라졌다.

남북이 지난 8월말 이미 합의한 노선을 그냥 고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협상을 해야 하는 절차상의 번거로움, 그리고 그에 따른 시간 지연을 이유로 내세웠다. 조사단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 의견을 묵살할 거였다면 왜 현장 조사니 뭐니 호들갑을 떨었느냐." "환경영향 평가는 애초 시늉만 하려 했던 것 아니냐."

이들의 목소리에는 자신들이 사실상 들러리 역할만 한 데 대한 불만도 담겨 있다. 하지만 동해선 연결 공사를 유달리 서두르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걱정도 들어 있다.

일반적인 공사의 경우 착공까지 사전 환경성 검토와 환경영향 평가 등을 거쳐 1∼2년은 걸리는 게 예사다. 하물며 비무장 지대는 세계가 주목하는 자연 보고(寶庫)다. 남북 모두에 더없이 중요한 자원이요, 후손들이 오래 간직할 재산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지금 취하는 태도는 상당히 근시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임기 내 업적을 세우려는 조급함 때문"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나온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동해선 복원이라는 민족의 큰 일이 생태계를 지키려는 노력 때문에 혹여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사업도 순탄히 진행하면서 생태계도 보존하는 당국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측과 생태계 보호라는 공동의 명제를 놓고 다시 머리를 맞대려는 노력이 그 첫번째가 될 것이다.

envirep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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