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양빈 고집땐 '得보다 失' 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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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연금돼 닷새째 조사를 받고 있는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 양빈(楊斌)은 결국 중국 내에서 범한 각종 불법 행위와 이를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중국의 강경한 방침, 명분보다 실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사정이 어우러져 결국 장관직에서 해임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하다.

楊장관을 그대로 둘 경우 이미 외신을 통해 속속들이 드러난 그의 비리 혐의 때문에 특구 자체에 대한 외국 기업의 신뢰감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한 북한의 자체 판단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우선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楊장관 소유의 어우야(歐亞)그룹이 지닌 문제가 전형적인 정·경 유착형 범죄라고 인식하고 있다.

더구나 양빈의 혐의 사실은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지시에 따라 지난 7월부터 벌어지고 있는 중국 당국의 중요 경제범죄 단속의 확고한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북한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첸치천(錢其琛)외교담당 부총리까지 직접 나서 북한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8일 밝혔듯이 楊장관의 신병을 확보한 뒤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외교적으로 상당히 배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사실뿐 아니라 중국의 입장을 '정상적인 외교 경로'를 통해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당국은 양빈의 여러 혐의 내용들이 ▶중국 일부 기업의 전형적인 부정행위에 해당하며▶배후에 정치권의 비호가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양빈의 비리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중국의 국내 문제라는 점을 집중 설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북한은 양빈이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서 대외적 이미지를 크게 해쳤고, 중국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다는 점 등을 감안해 楊장관 해임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또 중국이 楊장관을 연행하기 전 양빈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 옴에 따라 이 문제로 더 이상 중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실리를 따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북한이 추진하는 신의주 경제특구는 중국의 동북 경제권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신의주 경제특구가 굴러가게 하려면 초기 단계에서 인접한 단둥(丹東)시와 랴오닝(遼寧)성 등 중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처지다.

따라서 중국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양빈을 특구 장관으로 고집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 북한이 내린 결론인 듯하다.

외교적으로 항상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헤아려 주면서 아울러 중국의 지원을 통해 신의주 특구를 순조롭게 개발하기 위해 북한은 양빈 해임이라는 카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kjyoo@joongang.co.kr

-양빈이 소유한 계열사와 개인사업 분야들-

1.우유가공식품:네덜란드와 합작, 1억2천만달러 투자

2. 핫도그 생산공장:네덜란드와 합작, 하루 4백t 생산

3. 야채 보관 및 가공사업:야채 가공 및 딸기잼 생산

4. 종구 가공사업:백합·울금향 등의 구근 화훼 생산

5. 식품 가공:네덜란드 업체와 포테이토 칩 생산

6. 관광·레저사업

7. 어우야무역:방직·의복 등 무역업 담당

8. 부동산사업:허란춘 주택사업

9. 어우야실업:홍콩 증시에 상장된 어우야농업의 지주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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