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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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세(課稅)와 병역의무의 부과, 노동력의 관리 등을 위해 특정 시기에 전체 인구의 현황을 조사하는 일은 역사가 매우 오래돼 바빌로니아·이집트·중국 등에선 이미 기원전부터 인구조사를 주요 정책의 기초 자료로 활용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근대적 인구조사는 미국이 유럽의 식민지였다가 완전한 독립국으로 재탄생한 후 1790년에 실시한 국세조사(센서스·census)가 처음이다. 유럽에서는 미국보다 11년이 지난 1801년에 가서야 근대적 의미의 센서스가 실시됐다. 이 해에 영국·프랑스·덴마크·포르투갈이 미국의 센서스를 본떠 처음으로 대규모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한반도에서도 인구조사는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호구조사가 엄격히 실시됐다. 전 인구가 조사대상이 된 것은 정조(正祖) 이후였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인구조사는 1925년 조선총독부가 간이국세조사(簡易國勢調査)를 실시한 게 처음이다. 한국 자체로 시행한 것은 49년의 총인구조사가 최초였다.

조사항목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보통 50항목 정도를 조사한다. 그러나 조사내용의 공개·비공개 여부는 국가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공개를 원칙으로 하나 권위주의 국가들은 비공개 부분이 많다. 원자료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게 공산주의 시절 소련이다.

소련은 인구동태 및 사회자원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관리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의 상당부분은 언제나 '공무용'이라는 도장이 찍혀 비공개됐다. 39년에 실시됐던 인구조사는 '사회주의하에서의 급속한 인구성장'이라는 과제와 반대로 오히려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밝혀지자 통계를 조작해 3백만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발표했다. 소련 해체 후에도 이런 경향은 크게 변하지 않아 89년의 조사결과는 절반 이상이 '공무용'으로 분류돼 비공개됐다.

요즘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국세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많은 내용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러시아 민주화의 진전 때문이 아니라 인구조사의 후원사로 러시아의 신흥재벌들인 올리가르흐들이 참여해 적게는 2만달러에서 많게는 1백50만달러까지 후원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올리가르흐들이 후원의 대가로 비공개 부분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할 것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당 부분이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인 것이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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