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시범에 반해 태권도에 빠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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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나, 두-울, 세…."

더듬거리며 할 줄 아는 한국어라곤 이 세마디가 거의 전부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도 그가 태권도를 배우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

이번 부산아시안게임엔 낯선 나라가 하나 있다. 인도네시아와 25년간의 피비린내나는 독립 투쟁 끝에 21세기 첫 독립국으로 탄생한 동티모르. 동티모르는 아직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원국은 아니다. 그러나 옵서버 자격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위해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27일 아시안게임 선수촌에 입촌한 동티모르 선수단은 불과 29명. 모두들 한국행이 처음이지만 유독 태권도 선수 아리토 다코스타 누네스(25)만은 한국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것은 열세살이던 1991년. 중국인 사범으로부터 기본적인 품세를 익혔다. 그땐 도복도 없었고 태권도 정신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다.

유엔 평화군이 동티모르에 진주할 당시인 99년, 그가 살던 로스팔로스 지역에 한국 상록수부대가 도착했다. "일주일에 한두번씩 학교 운동장에서 격파 등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한국군을 보았다. 하얀 도복이 생명을 지켜줄 것 같았다"는 그의 말처럼 로스팔로스 지역에선 민병대의 테러로부터 자기 방어를 위해 '태권도 배우기'붐이 불었다. 그도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누네스는 2년 뒤 2001년부턴 상록수부대가 차린 태권도 도장에 다니며 하루 두차례씩 겨루기 등 본격적인 태권도 수업을 받았다. 그가 이번에 출전한 체급은 라이트급. "태권도의 나라 한국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성적보다 동티모르란 나라가 있다는 것을 전아시아인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말에서 애국심이 묻어난다.

부산=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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