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아트센터서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 30돌 기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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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이단아들이 돌아왔다. ‘현발(現發)’이라 줄여 불리던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 1980년 창립해 90년 공식 해체했으니 20년 만이다. 30대초 혈기 방장했던 작가들은 이제 희끗희끗한 머리의 60대 장년이 되었지만 작품은 늙지 않았다. 29일 오후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현실과 발언’ 30주년 기념전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스무 명 작가들의 목소리로 들썩들썩했다.

민정기 작 ‘세수’, 캔버스에 유채, 97×130㎝, 1980. 현발 동인들은 서민들의 일상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주목했다. [현실과 발언 3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제공]

제주에서 먼 걸음을 한 강요배씨부터 스스로를 ‘장로(장시간 노는 사람)’라 부르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이끄는 주재환씨까지 개막식은 시종 유쾌하고 난만했다.

김건희·김용태·김정헌·노원희·민정기·박불똥·박세형·박재동·성완경·손장섭·신경호·심정수·안규철·윤범모·이청운·이태호·임옥상·정동석씨는 훌쩍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손을 맞잡았다. 이미 고인이 된 오윤(1946~86)과 백수남(1943~98)은 작품으로 옛 벗들 곁에 왔다.

지하 1층부터 6층까지 7개 전시장을 채운 작품들을 둘러보는 관람객들은 잠시 시간을 거슬러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술의 힘을 다시금 가슴 뜨겁게 받아 안았다. 전체 6개 주제 중 하나인 ‘개념+예술+행동’을 기획한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현발 동인들의 작업은 예술적 표현을 감상의 대상으로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현발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동인그룹이자 운동집단으로 평가받는다. 80년대 일어났던 ‘민중미술’ 운동을 출발시킨 동력이자 미술의 사회 참여 가능성을 열어젖힌 선구였다. 미술을 통해 사회 역사 현실과 소통하고자 했던 그들의 ‘비판적 현실주의(리얼리즘)’ 정신과 목소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화가 겸 설치미술가 임옥상씨는 “현발 창립선언문을 보면 당시 우리가 가장 문제 삼았던 것은 ‘소통의 회복’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공공미술과 생활미술을 중시하면서 예술가로서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현발은 중요하다”고 자평했다.

문화예술위원장을 지낸 화가 김정헌씨는 “이 기념전은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현발을 미술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의 의미를 짚어보고, 이후 한국미술과 후배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데 뜻이 있다”고 했다.

8월 6일 오후 3시 오윤 전집 출판기념회와 작가와의 대화인 ‘현발의 친구들’이 열린다. 8월 9일까지, 02-736-1020.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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