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赤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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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朱), 홍(紅), 적(赤). 모두 붉은색을 뜻하는 한자다. 어떤 글자가 가장 붉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주(朱)는 정확히 말하면 색을 표시하는 글자가 아니다. 속심이 붉은 나무(赤心木)를 가리킨다. 색채라기보다 붉은 안료를 말한다. ‘주사(朱砂)와 가까이 있으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近朱者赤, 近墨者赤)’는 성어가 그 증거다. 주는 색감이 짙고 선명한 붉은색이다. 자전에서는 다홍색으로 풀이해 놓았다. 붉을 단(丹)도 주와 비슷한 염료다.

홍(紅)은 현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붉은색이다. 실 사(糸)와 소리 부분인 장인 공(工)이 합쳐졌다. 붉은 비단(red silk)을 의미한다. 홍은 새빨간 색이다. 원래 공자(孔子)는 홍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공자는 『논어(論語)』 향당(鄕黨)편에서 “ 빨간색이나 자줏빛으로 일상복을 삼지 않았다( 紅紫不以爲褻服)”고 말했다. 본디 정색(正色)인 적색과 달리, 홍은 두 가지 빛을 혼합한 간색(間色)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홍은 또 결혼 같은 경사(慶事)를 의미한다. 결혼과 장례, 경조사를 중국어로 홍백희사(紅白喜事)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붉은 깃발을 적기(赤旗)로, 중국은 홍기(紅旗)로 부른다. 적십자(赤十字)도 중국은 홍십자(紅十字)로 쓴다. 공산혁명의 영향으로 보인다.

적(赤)은 클 대(大)와 불 화(火)가 합쳐진 갑골문에서 유래했다. 적은 불꽃의 색이다. 오행(五行)으로는 남(南)방의 색이다. 주에 비하면 어두운 붉은색이다. 붉은 피(赤血)가 바로 적색이다. 갓난아이를 핏빛에서 착안해 적자(赤子)라고 불렀다. 더 나아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가 적나라(赤裸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맨손과 맨주먹이 적수공권(赤手空拳)이요, 맨손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한 것이 적수기가(赤手起家)다.

골칫거리는 적자(赤字)다. 외래어 부기(簿記, bookkeeping)에서 지출이 수입을 초과한 결손액을 붉은 잉크로 적은 데서 유래했다. 성남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심각한 재정적자 상태다. 호화청사, 방만한 살림살이, 포퓰리즘 공약들이 애꿎은 주민만 적자 시민으로 만들었다. 적자 줄이기는 허리띠 조이기가 상책이다. 알렉산더의 매듭 풀기 같은 묘책은 그 다음에 강구해 보자.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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