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진 보여주며 기발한 상상 유도 학생들 집중력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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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기저귀 회사 홍보하는 것 같아요!"

"기네스북 신기록에 도전하는 것 아니예요?"

교실 여기저기서 다양한 생각이 담긴 학생들의 의견이 나온다. 서로 자신의 생각이 맞다며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지난 6일 호주의 한 사업가가 기저귀 차림으로 '호주올림픽 마라톤 코스 기어 완주하기'에 도전하는 신문 사진을 학생들에게 보여줬을 때의 반응이다. 그 사업가는 어린이병원에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고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3학년 세계사 수업은 늘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시작한다. 수능이 채 두달도 남지 않은 교실 수업 분위기 치고는 제법 활기차다. 이런 분위기는 수업에 신문을 활용하기 시작한 학년 초부터 이어져 왔다.

매일 아침 나는 당일자 신문에서 교육적 가치가 큰 사진을 골라 크게 확대한다. 그리고 수업시간의 10분쯤을 할애해 그 사진을 소재로 학생들과 대화한다. 주로 제시된 사진이 어떤 사건과 관련된 것이며, 사진 속 인물은 누구인지 등을 추측해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하게 한다.

정답은 아니지만 기발한 답변들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사진을 찍는 순간 사진기자의 상황을 추측하는 설명을 해 다른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 학생도 있다.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학생들의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지쳐있던 고3 교실엔 어느덧 생기가 돈다.

보도사진을 매개로 시작한 수업은 교과와 관련된 기사 및 사진·광고 등을 편집해 만든 교안을 바탕으로 한 본 수업으로 이어진다. 학생들의 집중력은 상상 이상으로 높다.

지난번엔 '기저귀 찬 호주 사업가' 사진 외에 본 수업에 들어가서도 수해 현장에서 땀흘리는 자원봉사자들의 사진을 함께 보여주며 '봉사와 희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단 두장의 사진으로 봉사의 의미를 전달하고, 감동까지 일으킨 것이다. 쉬는 시간에 찾아와 수첩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 두장의 사진을 축소해 줄 수 없느냐며 애교 섞인 부탁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입시에 눌려 점차 말을 잃어간다.그러나 사진 한장에 까르르 웃기도 하고 때론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황금' 같은 교과서보다 사진 한장이 학생들에게 감동을 더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내일 아침은 어떤 사진이 학생들과 대화의 소재가 될까.

<안양 성문고등학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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