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인 탱고''댄스 클래식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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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만약 아프리카 흑인의 이동이 없었다면? 다양한 중남미 라틴음악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생각이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과 '상상'은 위험한 것이지만, 매번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아프리카 흑인들의 리듬은 아메리카 대륙 대다수 음악의 뿌리를 이룬다. 주로 서부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리듬과 스페인·포르투갈 등 유럽의 멜로디, 여기에 원주민 인디오의 문화가 혼합되면서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프로-아메리칸, 아프로-큐반, 아프로-브라질리안 같은 새로운 형태의 혼혈리듬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흑인의 이동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세계 음악의 지형도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제2의 국가(國歌)'로 평가받는 탱고 역시 그 밑바탕에는 아프리카 타악기 리듬이 깔려 있다. 거기에 유럽 이민자들의 칸소네·플라멩코가 섞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었다. 탱고는 1800년대 말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서 태어났다. 몰아붙이는 공격적인 액센트와 반복되는 중단리듬은 쉽게 화합할 수 없었던 이민자와 원주민의 갈등을 표현한다. 도시 최하층 천민의 음악으로 터부시되던 탱고는 20세기 초반 독일을 통해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의 살롱가를 강타한다. 결국 탱고는 세계를 정복한 최초의 월드뮤직인 것이다.

탱고 모음집 '패션 인 탱고'(이클립스뮤직)는 오랜만에 선보이는 정통 탱고모음집이다. 음반은 두장으로 구성됐는데 한장에는 보컬 탱고가, 다른 한장에는 연주 탱고가 담겨 있어 서로 비교·감상할 수 있는 쏠쏠한 재미까지 준다.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고풍스러운 연주는 극적인 느낌을 주며, 타이틀곡인 '포르 에스타스 카예스(그 거리를 걸으며)'의 쓸쓸한 반도네온(아코디언 비슷한 악기) 연주는 탱고 특유의 도회적 서정미를 물씬 풍긴다.

'댄스 클래식스'(서울음반·사진) 음반도 흥미롭다. 석장의 음반에 탱고를 비롯해 왈츠·폴카·발레·폭스트로트·플라멩코·맘보·룸바·차차차·보사노바·삼바까지 세계를 주름잡는 댄스뮤직들이 알차게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영화 '여인의 향기'와 '트루 라이즈'에 쓰였던 명곡 '포르 우나 카베사(간발의 차)', 영화 '아비정전'을 통해 익숙해진 '마리아 엘레나' 등 라틴댄스뮤직들이 솔깃하게 다가온다. 룸바·맘보·차차차는 이미 1950~60년대 세계를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을 통해 서부아프리카에 역수입돼 현재까지 그 지역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걸까.

<대중음악평론가·mbc '송기철의 월드뮤직'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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