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監은 정치 공방장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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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는 오늘부터 다음달 5일까지 3백65개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국감은 정부가 수행한 국정 전반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시정하는 입법부의 중요 기능이다. 그러나 정치상황은 12월 대선 기선을 잡기 위한, 정략만 앞세운 정치공방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김대중·민주당 정권의 국정 농단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현 정권의 조직적 국감 방해를 비난하는 한나라당이나, 국정의 잘잘못을 따지겠다면서도 "이회창 후보 관련 9대 의혹을 파헤치겠다"고 벼르는 민주당의 국감 논평이 예고하는 바가 바로 그렇다. 특히 병풍의 확대재생산 의지를 다지는 민주당 논평은 격돌과 파행을 예감케 한다. 李후보 흠집내기에 가만있을 한나라당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심각한 국정 현안이 산적한 때는 드물다. 만연한 권력형 비리로 인한 각종 국정 왜곡, 남남갈등을 일으킨 대북정책, 공무원 '노조' 허용·주5일 근무제를 비롯한 노사·복지정책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널려 있다. 공적자금 문제는 별도의 국정조사가 예정돼 있다지만 천문학적 국가빚의 대물림이 불가피한 사안으로, 철저히 가려야 할 대목이다. 공적자금 관련 정책·집행 기관이 자료 제출마저 꺼리는 만큼 그 의혹의 일단을 파헤치는 전단계 작업으로서 국감이 기능해야 한다. 예금보험공사의 성원그룹에 대한 4천여억원의 부채탕감이나 "2000년 5월 이후 정부가 금융기관 및 국책기관을 동원해 33조6천억원을 현대에 지원했다"는 한나라당 의원의 폭로 등 이미 나온 사실을 규명하는 데만도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양당은 이같은 국정 현안을 뒷전으로 한 채, 아니 정치적 시비로 초점을 흐려 실상을 은폐하는 식의 정치투쟁 일변도의 국감 운영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양당이 김대중 정부의 5년을 평가한다는 성실한 자세로 국감에 임할 때, 그것이 곧 국민의 신임과 평가를 받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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