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너무 멀리 있는 '오아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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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문소리씨가 '오아시스'의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로 베니스 영화제 신인 배우상을 수상했다. 박하사탕의 '순임'을 기억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관객들은 진짜 장애인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 연기를 흉내내 보려고 눈동자를 옆으로 돌려봤는데 단 10초도 참기 힘들었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눈동자를 옆으로 돌려보라. 단 누가 옆에 없을 때 해야 한다. 자신을 째려보는 줄 착각하니까. 뇌성마비 연기를 하느라 여러 차례 실신까지 했다고 하니 그 대단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얼마전 김보성씨에게서 들은 얘기다. 어린 시절 13대1로 싸우다 코가 깨지고 왼쪽 눈을 다쳤는데, 그때부터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결국 시각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의리파로 알려진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그가 출연한 영화 '보스 상륙 작전'이 히트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정말 기뻐할 일이다.

최근 자폐아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료 조사를 하다가 한 유명 방송인 부부의 아이가 자폐증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들은 한번도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무슨 자랑거리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숨길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그들이 자신의 아이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한다면 5만여명의 자폐아를 키우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큰 힘과 용기가 될텐데….

가수 조성모는 방송에서 형이 장애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자신이 한번도 따듯하게 대해주지 못한 형에 대해 얘기할 때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1~2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게 예사였는데 긴 줄을 무시하고 맨 앞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장애인과 그 보호자였다. 그때 같이 갔던 분의 말씀은 "장애인이 부럽구먼"이었다.

미국처럼 장애인의 천국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한국에서 이런 시각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다. 특히 예쁘고 좋은 것만 찾는 연예계는 이런 면에서 장애인을 더더군다나 배척하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방송출연을 금지 당했던 가수 이용복씨는 사석에서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플래시 좀 줘." 친구가 물었다. "자넨 어차피 안 보이는데 플래시는 왜?" "딴 사람이 와서 부딪친단 말이야."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까지도 웃음의 소재로 삼는데 우리는 장애인을 위한다는 구실로 방송 출연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아시스'를 보고 나올 때 뒤에서 들렸던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 따위 병신 얘기를 보라고 영화를 만들었나…. 에이 돈 아까워." 편견이란 나뭇가지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많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 많은 종두(설경구 역)가 필요하단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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