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침해 침묵한 노동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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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헌 소지가 다분한 법을 만든다는 건 무리다."(노동부 관계자)

"기회를 줄 땐 가만 있더니 이제 와서 웬…."(재경부 관계자)

재경부의 '경제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입법예고안에 노동부가 반대(본지 9월 12일자 42면)하고 나서면서 요즘 두 부처 사이엔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앞뒤 사정은 이렇다.

재경부는 경제특구에 입주할 외국 기업에 근로기준법과 파견근로자법을 무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면서 주무부처인 노동부에 '8월 17일까지 공식 입장을 제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노동부는 침묵했고, 재경부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이틀 뒤인 19일 입법예고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닷새 뒤인 지난달 24일 노동부가 뒤늦게 '외국 기업들에만 월차·생리휴가제를 폐지하고 파견근로자 사용기간을 완화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회신을 재경부에 보낸 것이다. 입법예고안에 대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노동조건 개악법을 전면 철회하지 않으면 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연일 들썩거릴 때다. 재경부쪽에선 이를 두고 "노동계가 세게 반발하고 나서자 뒤늦게 편승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한 노동부측 해명은 "재경부가 의견을 요청한 것은 8월 10일이었는데 시한이 너무 촉박해 늦었던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일에 관한 한 노동부는 비판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다.

노동법을 관장하는 주무부처로서 근로자들의 삶을 제한하는 타 부처의 법률 입안에 소극적으로 대처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더구나 헌법 침해 소지까지 있는 법안이라면 그동안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반대 입장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이후 수차례 진행된 관계부처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폈느냐"는 질문에 노동부 측은 말문을 닫고 있다.

노동부의 존재 이유가 근로자의 권익보호에 있음을 노동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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