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시나리오 어떻게 쓸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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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시나리오를 쓰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로움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 로버트 맥기는 이렇게 단정한다.

이 단정으로 그는 이 책이 시나리오에 관한 미국식 실용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할리우드 고전기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정련해, 1980년대 이후 미국 서부의 영화 명문 대학교들에서 그 성문법을 완성시킨 실용주의적 시나리오 방법론은 구조적으로는 영화의 시작인 1장과 사건 중심의 2장, 그리고 결말의 3장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2장의 끝이 중심 사건의 클라이맥스라면 3장은 반전을 위해 할애된다.

거기에 플랜트 (극의 후반에 의미를 갖게 될 요소들의 삽입)와 관객과 등장 인물에 대한 정보의 통제 등의 각론들을 보강하는 식이다.

이런 실용주의적 작법이 정점에 오른 것이 '미저리'나 '양들의 침묵'이다. 그러나 이 방법론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 유럽이나 아시아 영화들의 영화적 성공을 설명하는 데 궁색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저자는 실용주의적 방법론을 인정하되 미국과 대치를 이뤘던 유럽식 작가주의를 포용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방법론만을 추출해 써먹었던 기능 위주의 실용주의에 창작의 '철학'을 접목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창작 철학의 본체는 바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법은 판에 박힌 방법론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힘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이 책에서는 '조스'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페르소나', 그리고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똑같이 힘있는 이야기라는 층위로서 다루어진다. 기존의 상업영화대 작가영화라는 공식틀을 깨고 있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자신의 가치와 싸움하며,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발언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5백90쪽에 이르는 방대함은 그 방법론을 세세하게 훑으면서 거기에 철학적 주석까지 첨부하기 위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사이트 필드 류의 실용서와 확연히 구분되며, 시나리오 작가로서 나를 페이지마다 고통스럽게 했다.

육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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