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성규 국민銀 부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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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외환위기는 그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1998년 6월 큰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그 여파로 하청기업과 금융기관까지 연쇄 도산할 상황에서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이란 국내 초유의 처방을 도입하라는 임무가 이성규(43·李星圭·사진) 국민은행 부행장(당시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에게 떨어졌다.

그로부터 3년. 李부행장은 모두에게 생소한 워크아웃 제도의 골격을 갖춰 대우 등 1백개 기업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채권단끼리 합의해 부실기업의 빚을 깎아주는 대신 기업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이행시키는 '한국식' 워크아웃의 틀은 그의 손에서 다져졌다.

"젊은 나이에 의미있는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여깁니다. 막대한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했고요."

행운의 대가로 그는 세번의 목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 와중에도 5쪽짜리 협약서에 불과했던 워크아웃안을 1천5백쪽짜리 책으로 만들어냈다.

李부행장은 13년 동안 한국신용평가와 제일제당·EMI코리아 등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직장을 거치다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에게 '미스터 워크아웃'으로 전격 발탁됐다.

"항상 언제 어떤 일을 할지 모른다는 '5분 대기조'의 자세로 살아온 게 큰 일을 맡는 데 도움이 됐어요. 한신평에선 기업을 분석하는 눈을 키웠고, 기업에선 구조조정 실무를 익혔습니다."

2000년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서 서울은행 여신담당 상무로 옮겼다. 당시 41세로 시중은행 최연소 임원이었다. 유망한 은행산업과 함께 자신을 발전시키자는 목표를 세웠다.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 설립추진위 사무국장으로 잠시 은행권을 떠난 그는 올 초 다시 국민은행으로 돌아왔다. 워크아웃 본부장으로 여신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4천여명의 직원으로 이뤄진 후선(後線)업무센터를 총괄한다. 李부행장은 머지않아 지점에선 고객 서비스만 맡고 나머지는 모두 후선에서 처리하는 식으로 은행 업무가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제 일할 시간이 10년쯤 남았습니다.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돈 버는 정보와 돈 쓰는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회사를 키워보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은행원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글=신예리,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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