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친서민도 좋지만 시장은 시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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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들의 금융 현장을 방문해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 회사의 이자가 연 40~50%라면 너무 높다”고 질타했다. “간판도 없는 사채업자나 그런 이자를 받는 줄 알았는데…”라며 “(시장에서) 구두를 팔아 어떻게 40%가 넘는 이자를 갚겠느냐”고 혀를 찼다. 서민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던 이 대통령은 “대기업은 몇조원씩 이익이 났다는데 없는 사람은 죽겠다고 한다”며 걱정했다. 친서민 행보를 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선 당연한 지적이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주문한 것이다.

대통령의 진노(嗔怒)가 확인된 만큼 머지않아 캐피털 업계는 앞다투어 대출금리를 내리는 시늉을 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곧바로 “캐피털 회사들의 현황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캐피털 업계는 원래 할부금융을 취급하기 위해 탄생했다. 예금 등 수신 기능이 없어 연 10%대의 회사채나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모아 빌려주는 구조다. 조달 비용이 높고 떼일 확률도 큰 만큼 대출금리가 비쌀 수밖에 없다. 신용도가 나쁘면 연 20~35%의 고금리로 가계대출을 받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캐피털사를 찾는 서민들은 이 정도의 이자를 내지 않으면 어디서도 급전(急錢)을 빌릴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신용도가 나빠도 마음 놓고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대기업들에 대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달라는 주문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친서민 정책이 강조되면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십상이고, 결국 부작용을 낳는다. 구축효과(驅逐效果)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도 그만큼 민간소비가 줄어들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캐피털 업계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압박하면 당장은 대출금리가 내려가겠지만 길게 보면 서민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 캐피털사들이 대출을 꺼리면 훨씬 높은 금리의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시장원리다. 아무리 친서민 정책이 중요하다지만 시장은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