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강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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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 동독지역이 지금 극심한 물난리를 겪고 있다. 통상 '백년 만의 대홍수'로 부르고 있지만 엘베강 수위로만 따진다면 '사상 최악'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고도(古都)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엘베강에 수위계가 설치된 이후 최고를 기록했던 것은 1백50여년 전인 1845년. 당시 수위는 8.77m였다. 그러나 이번엔 이를 훌쩍 뛰어 넘어 9.40m를 기록했다. 평상시 수위가 2m인 것을 감안하면 홍수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아의 홍수'를 뜻하는 '진트풀루트'라는 표현도 자연스레 언론에 등장한다.

당연히 피해도 엄청나다. 15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실종됐으며 수백억 유로, 우리 돈으로 수십조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통일 이후 12년 간 우리 돈 약 1천조원을 투입해 이룩한 옛 동독지역 재건사업이 몽땅 '도루묵'이 됐다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 여간해선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독일인들이지만 수마에 처참하게 무너진 집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짓는 주민들의 모습도 TV에 자주 비친다.

그렇다고 독일인들이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민·관·군이 하나가 돼 이 초대형 자연재해에 맞서 당당히 싸우고 있으며, 또 승리를 거두고 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중엔 앳된 얼굴의 초등학생들까지 끼어 있다.

이들은 수위 상승이 예상되는 곳으로 달려가 밤을 새워가며 강둑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다. 한 청년은 TV 인터뷰에서 30시간째 잠도 못자고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땀으로 데사우·비텐베르크·마그데부르크 등 엘베강 하류지역 고도들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근면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인들이 이웃사랑의 자원봉사로 다시 엘베강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연례행사로 수해를 겪는 우리에게 독일인들의 이같은 홍수와의 전쟁과 승리가 남의 일일 수만은 없다. 우리는 예부터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온 민족이다. 관혼상제나 농사철 두레·품앗이·계 등을 통해 상부상조했고,향약에서도 이웃의 재난과 어려움을 서로 돕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을 4대 덕목으로 꼽았다.

지금 낙동강 하류지역 수재민들은 외부의 도움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개학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남아 있다. 젊은이들이여, 가라 ! 낙동강 하류로.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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