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탈북 꿈만 같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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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혈육을 찾으려는 형제들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어요."

목선을 타고 북한을 탈북한 순종식(荀鍾植·70)씨의 남한 형제들은 "흩어졌던 5남매가 52년 만에 다시 모이게 됐다"며 기쁨에 어쩔 줄 몰랐다. 특히 2000년 12월 15일 중국 단둥(丹東)시 부근 동항에서 형과 조카인 용범(45)씨를 만난 셋째 동생 봉식(奉植·55·대전시 중구)씨는 "형의 탈출 소식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에서의 만남은 "아버님 형제 소식을 알아봐 달라"는 용범씨의 부탁을 받은 무역업자 李모씨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용범씨는 중국과 밀무역을 하면서, 봉식씨는 무역업을 하면서 각각 李씨를 알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

용범씨는 그해 12월 李씨에게서 봉식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뒤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종식씨는 아들이 모는 어선을 타고 북한군 감시망을 피해 중국으로 나왔다. 봉식씨는 비행기편으로 중국에 도착했다.

봉식씨는 "어머니를 빼닮은 형을 한눈에 알아봤다"며 "형님이 꿈에 그려온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이 가슴에 맺혀 남한행을 돕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들 형제의 만남은 3박4일이라는 순간에 불과했고 그 뒤 1년8개월 동안 소식이 다시 끊겼다. 그러다가 이번에 종식씨 일가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남한의 종식씨 형제들은 95년 1월 한 백두산 관광객으로부터 형이 가족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종식씨가 북한을 오가는 중국동포에게 남한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부탁했고, 중국동포들이 남한 관광객들에게 이같은 소식을 전한 것이 기적처럼 이어진 것이었다.

봉식씨는 98년 3월 옌볜(延邊)의 한 민간인의 주선으로 압록강변에서 형을 2백여m 떨어진 곳에서 잠깐 보기도 했었다. 봉식씨는 "어머니 생전(98년 사망)에 큰형을 만나게 해드리려고 중국을 자주 드나들며 동포들과 접촉한 것이 결실을 보았다"며 기뻐했다. 荀씨 가족이 생이별을 한 것은 50년 7월 농사를 짓던 맏형 종식씨가 고향인 논산시 안골마을에서 북한 의용군에 끌려가면서부터였다.

둘째인 동식(61·양돈업·홍성군 홍북면)씨는 "형이 생존해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아왔는데 만날 수 있게 된 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동생 동례(57·대전시 중구)씨는 "오빠 가족 탈출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생각나 한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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