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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남북교류 긴 안목서 추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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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구에서는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북한 응원단을 초청했던 경험을 살려 남북 교류협력에 적극 나서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필요한 조례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지방이 남북 교류협력의 새로운 주체로 떠오른 지는 오래됐다. 강원도는 1989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남북교류협력지원팀을 만들어 남북 지방 사이의 교류협력을 앞장서 추진해왔다. 남북 강원도가 실시한 새끼연어 방류와 금강산 솔잎혹파리 공동방제사업은 지방자치단체 교류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제주도는 98년부터 해마다 감귤과 당근을 북한에 보내고 있다. 북한은 이에 답해 제주도민을 초청해 관광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는 남북교류협력을 위해 2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양강도에 경운기를 보내고 지붕개량 자금을 지원했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는 각각 북한에 농기계수리공장을 짓고 경운기.콤바인 등 농기계를 지원하면서 북한에 대표단을 보낸 바 있다.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지방의 시각과 문제의식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동서독 통일과정에서도 지방을 단위로 한 교류협력은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86년 독일연방공화국의 자르루이스와 독일민주공화국의 아이젠휘텐슈타트가 자매결연을 한 후 89년 말까지 62개 도시에서 자매결연이 이뤄졌다. 그 같은 접촉 교류를 통해 상호 생활상을 이해하고 편견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는 물자와 정보.인적자원 교류, 행정 자문을 위한 통로가 됐다. 남북 지방 사이의 교류협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뚜렷한 전망이나 치밀한 준비 없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일을 만드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현실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의욕만 가지고 두서없이 일을 추진하다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지방을 단위로 한 교류협력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비정치적 협력과제를 수행할 수 있으며 남북 상호 간의 이익을 교환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 주민 사이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합과정에서 능률적 지방행정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지금까지 24개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42개 남북 교류사업이 정부에 의해 승인이 되었다. 이 가운데 실제 교류가 성사가 된 것은 15건, 미성사는 17건, 추진 중인 사업은 10건이다.

남북 지방 사이의 교류협력 증진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행정.재정 지원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지자체는 물론 철저한 사전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눈앞의 성과에만 욕심을 내지 말고 남북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이라는 긴 안목에서 일을 추진해야 한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 정치외교학과